2024/06 16

퍼펙트 데이즈 / 야쿠쇼 코지

​​한 남자가 있다. 오십대쯤 됐을까. ^ 출근 전골목을 비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빛이 방으로 스미는 새벽 그는 잠에서 후다닥 깬다. 이부자리를 개고 양치질을 하고 수염을 깨끗하게 다듬고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집은 좁지만 잘 정돈돼 있다. 책과 음악 테이프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꽂혀 있다. 하늘을 쳐다보고 씽긋 미소지은 후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사서 마신다. 작은 밴을 타고 올드팝을 들으며 도로를 달린다. 서서히 도심의 면모들이 드러나며 해가 떠오른다. 그가 목에 걸치는 수건과 운동화가 깨끗한 흰색이다. 그가 이 일을 대하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출근 후그는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성실히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점심은 가까운 신사의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

허송세월 / 김훈

김훈의 신간은 '늙기의 즐거움'으로 시작한다. 삐그덕거리는 육신을 고쳐가면서 느끼는 비애보다는 담담함으로, 정신은 여전히 쨍하다. 그럼에도 맵고 날카롭게 말하길 저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이 그런 것이라는 쓸쓸한 자각까지.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차며, 허송세월로 바쁘다신다. 노인, 말년하지만 여전히 시니컬하다. ​​* 내가 좋아하는 술은 위스키다. 위스키의 취기는 논리적이고 명석하다. 위스키를 몇 방울 목구멍으로 넘기면 술은 면도날로 목구멍을 찢듯이 곧장 내려간다. 그 느낌은 전류와 같다. 위스키를 넘기면,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그 전류의 잔잔한 여파들이 몸속으로 퍼진다. 몸은 이 전류에 저항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인다. ... 건강을 회복해서 술을 마실 수 있..

놀자, 책이랑 2024.06.28

서시 모임 / 축하, 축하

이번 주 두 번이나 인사동 '현조' 행이다. 월욜, 현대수필 편집회의. 이 날은 한옥카페에서 빙수를 먹고 2차 수다도 있었다.​어제 서시 모임에서 강정숙 시인 출간을 축하했다. 참 오래된 인연들이다. 축하 후 합평이 있어 2차을 하지 않고도 시간이 훌쩍 지났다. 횡성에서 혜민씨가 우리집에 차를 세우고 함께 버스를 타고 가서 올때는 백현동에서 탄천과 굿모닝파크로 걸어왔다. 산골 애들을 많이 가져왔다. 산딸기, 복분자, 오디. 버섯...바지만 입는 혜민씨한테 널널한 원피스 두 개를 줬다. ㅋㅋ 갈아입고 갔다. ​누구든 가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강시인의 시는 자유시로 읽어도 좋고, 시조로 읽어도 좋다. 오래 숙성한 진국들이다.천생 시인인 그의 열정으로 '시인회의'가 이렇게 굴러간다.감사하며, 박수보낸다...

걷기 / 우이령길

6/ 25일 수필반 8명 참석,아침 9시 38분 판교역에서 출발. 환승해서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거의 두 시간이 걸린 듯.양주 교헌리에서 석굴암을 거쳐 우이령을 걸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잇는 사잇길이다.​​​​​​​​​​반갑지 않은 조각품, 저런 것들이 중국산이라는....​​​ ​​​​​​내려오는 길에 반가운 피정의 집을 만나고~~ ​​​주로 숲길이고 바람이 불어줘서 걷기에 좋았다. 두유와 감자, 참외로 첫 간식, 두 번째는 와인과 먹태, 과일, 빵, 닭고기... 거한 간식을 먹고, 우이역에 내려와서 왕가불고기를 먹고.늘 먹는 즐거움도 함께 한다. ​우이역에서 4번 환승해서 판교역까지 왔다. 우이역은 두 량짜리 경전철이었다. 걷기 덕분에 온갖 전철을 다 타 본다. ​오랜만에 2만보를..

낯선 길에서 2024.06.26

꽃이 피는 소리 / 한영자

한영자 작가는 6 25 전쟁으로 한글 터득이 늦어졌다고 한다. 국군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던 세대다. 커다란 시련없이 맑은 심성을 유지하며 살아온 듯하다. 안과의사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며 느낀 점과 개업후 만난 환자들 이야기, 특히 어린 환자들을 대하는 모습이 정겹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음악과 그림에도 심취한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꽃이 피면서 내는 소리를 듣는 이의 아름다움이 있다. 복된 삶을 편안하게 바라보았다. ​​* 만나는 분들은 내면에 이미 문학, 음악, 미술 옷을 두르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멘토가 되고 겉옷을 한 벌 씩 내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마음을 보이면서…. 글, 그림, 노래가 부르는 손짓을 외면하지 않고 내면을 넓혀나갔다. 커진 그릇에 진료의 아픔도 담게 되..

놀자, 책이랑 2024.06.24

초예측 / 유발하라리, 제레드 다이아몬드 외

'초예측'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이렇듯 큰 주제에 석학들의 답은 그리 스펙타클하지 않다. 이 덜렁이는 유발하라리의 신작인줄 알고 주문했다. 끙~~ ​8인의 석학들 중에 아는 사람은 앞의 두 사람뿐이다. 엮은이가 일본인이라서인지 일본의 예가 많이 나온다. 우리 사회가 일본을 답습하고 있으니 새겨둘 일이다. *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이나 테러에 관한 뉴스를 끊임없이 접하지만, 공식 통계로는 전쟁이나 테러로 죽은 사람과 범죄로 죽은 사람의 수를 합한 것보다 자살자의 수가 많습니다. 게다가 그 수치는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요.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자살자 수는 훨씬 많을지도 모릅니다 ... 지금 인류는 석기 시대에 비해 수천 배 이상의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배만큼 행복해졌을까요? ..

놀자, 책이랑 2024.06.17

북토크가 있는 주말

6/10계속되는 생일주간.최 동지와 문선배님을 만나 '어가일식'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요즘 너무 과식을 한다. 서현 천장 높은 카페에 갔는데 자리가 없다. 어쩌면... 월욜인데. 합석을 하다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선물을 잔뜩 받고... 또 황송 ​6/11막내고모님 요양병원 문병을 다녀왔다. 남편, 시누와 함께. 고모님은 다리를 수술해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는데 맑은 얼굴이다. 우리 줄 음료수도 챙겨오시고,정신이 맑으셔서 다행이다. 운정역에서 만나 함께 간 작은아버님을 만나서 올때는 도곡동에 내려드리고.​​새벽에 일어나 전복죽을 끓이고, 이것저것 챙겨갔다. 내 맘 편안하자고.​6/14중딩친구 조정숙 부부와 함께 '갯마을'에서 저녁 식사, 소맥에 발동이 걸린 남편이 맥주를 더 마시겠다고 해서우리집으로..

책 읽기는 귀찮지만 독서는 해야하는 너에게 / 김경민 • 김비주

제목을 보는 순간 태경, 시경을 생각하면서 주문을 했다. 기대 이상이다. 중3 아들 김비주와 작가인 엄마 김경민이 함께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다.난 바로 할머니 모드가 되어서 그저 홍야홍야~ 칭찬만 하고 싶어졌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소개하는, 등장인물 소개부터 범상치 않다. 앙증스러운 그림도 재미있다.​글쓰기의 힘에 크게 끄덕인다. 글로 풀어내면 고통이나 상처가 희석된다는 것, 더 나아가 치유되기도 한다. ​* 작가 역시 쉽게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자신에게는 대답이 있지만 일부러 질문을 던지는 선에서 끝냈는지도 모르고. 좋은 문학은 명쾌한 대답이 아니라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니까. 심윤경 (105쪽)​* 경민​ - 실제로 전쟁 기간에는 자살률이..

놀자, 책이랑 2024.06.14

꽃잎 한 장처럼 / 이해인

깔끔한 하드장전이다. 딸 친구 효영이 한테 선물받은 책이다. 생일책이라고 표지에 써있었다. 고심해서 골랐을 것이다.효영이는 아들 하나인데 집에 티비가 없단다. 사방이 책이고 학원은 태권도만 보내고 둘이 시간을 보낸다. 아들 민재는 '아줌마'가 다 되었다고 한다. 민재가 좀 더 크면 함께 책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만인가. 수녀님의 일상을 바라보는 일이...그런데 그때 그~ 때랑 느낌이 똑 같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비하며 행복해하는 일상. 사랑하며 감사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그대로인데 자주 찾아오는 통증을 견디는 일이 더해졌다. 큰 병에 걸리고 수술도 하고 힘든 시간을 지나오셨다. 이제 노쇠의 길을 걸으면서도 소녀의 웃음을 잃지 않고 계시다. 아름다운 수녀님을 위해 ..

놀자, 책이랑 2024.06.11

세상의 시 / 고은

여전히 시가 터져나오고 있는 고은 시인의 새 시집이다. 관여 선생님이 발문을 쓰고, 보내주셨다. 내게 시를 많이 쓰라고 하신다. 에 발표한 시를 보고 격려해 주신다.선생님은 오래 전 고은 시인께 고마운 일이 많다고 하신다. 나도 고은 시인을 여러번 만났다. 내 연식으로는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의 시' 160편을 만나고 나니, 세상이 콩딱지만하기도 하고 우주같기도 하다. 제목도 없이 번호로 매겨진 '세상의 시'들.시집을 덮으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행인가, 날마다 시가 오고 있다. 두서없이 오는 그것이 시가 아닌지 시인지를 굳이 나누지 않는다. 그럴뿐더러 나 자신도 시인 66년 이전의 나로 환원한다. 옛 달빛이 새삼스럽다. .... 처음은 있으나 나중은 모른다. 1권으로 그칠지 몇 십권..

놀자, 책이랑 202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