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652

그곳에 내가 있었네 / 조성진

긴 여행을 할 때는 공항 서점에서 책을 한두 권 산다. 뱅기 안에서 다 읽고 돌아오기 전에 지인에게 선물을 한다. 이것이 내 여행 습관 중 하나인데, 이번 보은 문학기행에서는 버스에서 책을 받았다. 손 안에 폭 들어오는 단정한 책이다. 당장 포장을 풀고 읽기 시작했다. 여행하며 여행기를 읽는 재미는 또 다르다. 치밀한 계획없이 무작정 아내와 세계일주를 떠난 패기가 부러웠다. 그 사연은 밤에 모두 둘러앉아 들은 긴 자기소개로 이해가 갔다. 그동안 겪은 정신과 육체의 과부하에서 탈출구가 필요했던 거다. 잘 살아내기 위해서 재충전이 갈급했다. 스마트 기기를 자유롭게 다룰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있다. 체크 카드를 자판기에 두고 오고, 여행자증명서 때문에 손해를 보고, 파리에서 집시들에게 휘둘리며 곤혹을 ..

놀자, 책이랑 2025.05.20

신곡神曲 / 단테 알리기에리

​책장에서 찾아낸 은 정가 9,000원짜리 오래된 벽돌책이다. 읽은 흔적은 있는데 남아 있는 기억은 별로 없다. 20대 임윤찬이 외우다시피 한다는데... 급하게 읽던 버릇을 누르고 찬찬히 오래 읽었다. 이탈리아어를 몰라서 그 묘미를 못느끼지만, 신곡은 압운을 맞춘 11음절이 14,233절로 이어졌다.우리나라 판소리처럼 리듬을 타면 쉬이 외워지는가 보다. ​을 읽기 전에 단테의 생애와 배경을 살펴봤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꽃의 도시라는 피렌체에서 1265년, 5월에 태어났다. 피렌체 시를 개척한 로마 인의 후손이다. 귀족혈통을 이어 받았지만 정의감으로 정쟁에 휘말린다. 피렌체의 자주를 위해 기병장교로 활약하고 초기 공직 생활이 성공하며 시의회 특별위원이 된다. 행동파인 그는 반대당의 음모를 막기 위해 로마로..

놀자, 책이랑 2025.05.12

단어의 집 / 안희연

수욜, H 선생에게 산문집을 선물을 받았다. 집에 오자마자 단숨에 읽었다.안희연, 86년생 시인이다. 아프다고, 슬프다고 콧날 찡그리는 모습까지 푸르싱싱하다. 나, 벌써 노인의 시선이 된 듯하다. 홍야홍야~~ 그저 귀엽고 이쁘게 보인다.내가 모르는 단어가 이렇게 많았는가. 주로 외래어로 된 생소한 단어에 걸렸다. 시인이 감수성을 건드린 단어들을 가지고 논다. 궁글리고 까불리고 후벼파며, 때론 달달하게, 결국은 슬프게 닿는 부분이 많지만 촉촉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글이 되는 최소 단위, 단어를 독립시켰다고 해야할까. 자기 색을 입혀 날개를 단다. 색다르게. 많은 책과 영화가 언급되는데 내가 읽은 책은 , 영화는 정도다. 애틋한 마음이 우러나오는 허수경 시인도 반갑게 만났다. 2021년 초판에 20..

놀자, 책이랑 2025.04.17

산벚꽃 피었는데 / 조선근

오래 전 행사때마다 멀리서 사진찍던 모습을 보았던 조선근 선생이 등단 20년만에 첫 수필집을 냈다.글을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았던 일상이라고 할까. 아쉬울 것 없이 환경과 품위있는 가풍과 넉넉한 사랑을 받고도 어린시절 어머니의 부재를 상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 표제작인 , 제 1회 한국산문문학상을 탄 에 작가의 한 생이 모두 그려진다. 참으로 잘 살아낸 신심깊은 큰 사람이 보인다. 임헌영 선생님의 해설 - '3대에 걸쳐 완성된 창작혼의 비의'는 훌륭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좋은 아버지까지, 인물평으로 읽힌다. 사람을 아는 것이 수필의 근본이다. 고고한 혹은 고독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 훌쩍 큰 키에 반듯한 이마, 깎아놓은 배처럼 하얀 잇속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 게다가..

놀자, 책이랑 2025.04.14

그림자가 사는 곳 / 김창식

행사때 얼굴을 보는 김창식 선생님의 세 번째 수필집이다. ​* .... 한 편 한 편에 혼을 담은 치열한 글을 써서 수필 문학이 다른 산문 형식에 못지않은 매혹적인 장르임을 실증하고 싶군요. 삶의 진정성을 토대로 지성(철학성)과 감성 (문학성)이 조화를 이룬 글을 써서 같은 길을 걷는 문우는 물론 일반 독자와도 소통하고 싶습니다. - 책을 펴내며 ​ 작가의 결심처럼 소소한 일상을 토대로 솔직하고 정감있는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실험수필에 도전했다. 열과 성을 다한 작가의 시간에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 * 그림자는 혼자 산다. 어디에? 그림자를 내쫓은 빛과 어둠의 경계면에, 아니면 볕도 들지 않는 어둠의 저편 더 짙은 어둠 속에, 시간과 공간이 엇갈리는 협곡의 틈새에. 아니 겉보기에만 그럴 뿐. 그..

놀자, 책이랑 2025.04.06

유럽에 서 봄- 남프랑스 / 수정

세 번째 책이다. 2019년에 나온 첫 책의 2쇄를 시작으로 수정 작가의 새로운 매력에 빠졌다. 똑부러지는 이성 안에 한없이 말랑한 감성을 읽을 수 있다. 맹렬히 살아 낸 사람에게 포상이 필요하다. 낯선 나라, 새로운 거리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재충전 하는 건 지혜로운 일이다. 그의 행보에 박수 먼저 보낸다. '남프랑스에서 한 달살기' 부제가 붙었지만, 내 느낌으로는 더 오랜 시간 머문 기록이다. ​ ​심플한 작가 소개​​ * 열정에 불이 붙는다. 이런 시간이 왔다는 것은 축복이다. 움직이고 싶은 방향이 있고 동기가 있고 기회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번 책에..

놀자, 책이랑 2025.04.01

해류 속의 섬들 / 어네스트 헤밍웨이

봄호에 김경주 시인의 연재글을 읽고 바로 주문했다. ​500쪽 묵직한 책을 어제 그제 다 읽었다. 일주일 동안 인사동을 다니느라 책이 고프기도 했다. 벽돌책의 특징이 있다.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은 도입부다. 그러나 이 책은 아들 셋이 등장하면서 가속이 붙는다. 화가인 주인공 토마스 허드슨은 비미니 섬에 산다. 아쉬운 것 없는 풍요로운 삶이다. 작가 친구가 가까이 살고, 하인이 줄을 서 있다. 정기선으로 온갖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며 황제(?) 같은 생활을 한다.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맘껏 그리고, 그림을 그려놓으면 파리의 화상이 와서 가져간다. 아이와 어른, 아빠의 친구 (작가 로저)와 친구 아들이 친구가 되어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아니, 부럽다. 두 번 이혼을 하고 세 아들이 있다. ..

놀자, 책이랑 2025.03.29

어느 날, 그리고 문득 / 이혜연

8년 전, 을 시작하면서 분기별로 만나게 된 이혜연 선생은 늘 건강이 염려스러웠다. 어제 받은 책을 다 읽고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전히 몸이 우위에 있다지만, 내가 염려하던 것보다 강건한 정신에 안도했다. 간간이 보이는 자조에서도 자존이 느껴져 다행이다. 남은 날을 준비하는 마음에 연신 끄덕였다. 내가 아는 작가들과 책이 많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밑줄 대신 붙이는 포스트잇이 많이 붙었다. 단숨에 읽은 것이 미안할 지경의 공력이다. 거듭 읽으며 공부할 구절이 많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인 임영웅에 대한 팬심마저 글쓰기와 연결시키는 당위가 고급지다. 갑자기 내 옆구리가 시리다. 푹빠져 눈물을 흘릴만한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건 분명한 결핍이다. 덕분에 흘려버리고 있던 각성을 수습한다. 선생의 '잠재된 행복..

놀자, 책이랑 2025.03.07

보리누름 축제 / 박인목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모범답안이 될만한 책이다. 큰 상처 없이 건실하게 살아온 나날과 성실하게 살고 있는 일상을 힘 빼고 기록했다. 힘 빼기가 어렵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 편안한 서술에 금세 마음이 열릴 것이다. 나같은 도시촌놈은 짐작도 못한 먼 옛이야기로 들리는 '보리누름' 이 보리밟기가 아니란 것도 알게되었다. 보리 싹이 나온 것을 언땅에 뿌리가 제대로 내리라고 눌러주는 것이라고 한다. 버스차장 이야기는 나도 건너온 시간인데 결이 한결 따듯하다. 치열하게 살아낸 나날이 배경으로 짐작된다. 가끔 과음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슬몃 웃음짓게 한다. 보기드문 '바른생활인'이다. 세무전문가로서 전해주는 정보도 새롭고 배울만한 점이 많다. 지나온 시간과 나아갈 시간이 모두 축제임을 곁에서 이야기하듯..

놀자, 책이랑 2025.02.21

그림자의 강 / 리베카 솔닛

연천 동네책방에서 사온 책이다. 읽는데 한참 걸렸다.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가 살아낸 시대를 재구성했다. 곁에서 바라본 듯, 가까운 시선으로 그의 모든 것은물론 그가 담겼던 시대상까지 세세히 들여다본다. 필연의 고리가 훤히 꿰어지도록. 아내의 정부를 죽이고 살인범이 되었으나 배심원들이 입장바꿔 생각하며 풀려났다. 그 시대상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너무 어린 아내, 플로라를 선택한 게 불운이다. 두 아이를 사산하고, 세번 째 아들을 낳고 정부가 남편에게 살해되고, 이혼을 요구하다 병이 들어 죽은 플로라는 스물네살이었다. 자유연애와 여권운동이 혐오의 대상이던 시대다. ​​작가연보가 15쪽, 각주가 41쪽에 달한다. 한 세기 전 사람을 기록함에 있어 이런 치열함이 필요하다. 숙연해졌다. 유난..

놀자, 책이랑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