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유럽에 서 봄- 남프랑스 / 수정

칠부능선 2025. 4. 1. 17:53

<유럽에 서 봄> 세 번째 책이다. 2019년에 나온 첫 책의 2쇄를 시작으로 수정 작가의 새로운 매력에 빠졌다. 똑부러지는 이성 안에 한없이 말랑한 감성을 읽을 수 있다.

맹렬히 살아 낸 사람에게 포상이 필요하다. 낯선 나라, 새로운 거리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재충전 하는 건 지혜로운 일이다. 그의 행보에 박수 먼저 보낸다.

'남프랑스에서 한 달살기' 부제가 붙었지만, 내 느낌으로는 더 오랜 시간 머문 기록이다.

 

심플한 작가 소개

* 열정에 불이 붙는다.

이런 시간이 왔다는 것은 축복이다.

움직이고 싶은 방향이 있고

동기가 있고 기회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번 책에는 내가 못 가본 도시가 더 많다. 

 

* 니체의 산책로로 알려진 마을에서 해변까지의 길은 세므르도르 호텔 왼쪽에서 시작된다. 가파른 지형만큼 산책길도 만만치 않다. 그는 이 길을 좋아했고 기꺼이 돌과 먼짓길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심연의 시간을 건너 현대 철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의 일부를 집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바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37쪽)

* 알프스 산맥에서 발원하여 프랑스 대륙을 종단하는 론강은 이곳 아를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고 카마르그라는 삼각주를 만든다. 홍학, 소금호수, 염전 등이 카마르그 공원에서 아를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있고 살 축제와 쌀 요리를 하는 가게들이 아를에 보이는 이유다. 호수의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작은 갑각류 덕분에 플라밍고들은 분홍으로 물들고, 장미색을 닮은 핑크 소금이 만들어진다. (142쪽)

'살다 보니' ... 그냥 깨달아 지는 일들에 고개를 끄덕인다.

 

* 길고 긴 산책길을 걸으며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벽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 성과 도시만은 아닌 듯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듯 시간 여행의 길 위에 서면 고요한 수면의 아래로 내려가 스스로의 얼굴을 마주하기도 한다. 여행은 삶의 태도를 분명하게 해 준다고 했던가. (217쪽)

* 나는 먼 곳까지 와서 내가 얼마나 한글을 좋아하는지 다시 확인받는다. 지루하고 길었던 여름 장마나 혹한의 겨울이 집 앞의 길을 다 막아버려도 내가 살아 낼 수 있었던 것은 한글 덕분이었다. 글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공기와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같다. 유럽의 한가운데 어쩌면 사치스럽기까지 한 시간 중에 알 수 없는 극한의 궁핍과 불안이 주위를 맴도는 것은 독서의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 금단 현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미묘한 공포와 무기력이라고.

(232쪽)

* 에필로그

왜 자꾸 떠나느냐고?

나에게 스스로 물어보는 말이다. 돌아돌 수 있어서, 두고 올 수 있어서. 견딜 수 있어서, 떠난다고 말한다. 진부한 나이 타령이 아니어도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계획하고 공부하고 떠난다. 화려한 청사진이 있는 것도,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친찬받을 일 없는 떠남을 멈추지 못한다. 꼭 한가지만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그건 잘 죽어가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 있다. (271쪽)

이미 꾹꾹 눌러둔 관조와 성찰을 딛고 가볍게 비상하길.

그의 열정이 자주 불붙어, 길 위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쉼없이 즐거움만 거두길.

알려지지 않은 수정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