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모범답안이 될만한 책이다.
큰 상처 없이 건실하게 살아온 나날과 성실하게 살고 있는 일상을 힘 빼고 기록했다. 힘 빼기가 어렵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 편안한 서술에 금세 마음이 열릴 것이다.
나같은 도시촌놈은 짐작도 못한 먼 옛이야기로 들리는 '보리누름' 이 보리밟기가 아니란 것도 알게되었다. 보리 싹이 나온 것을 언땅에 뿌리가 제대로 내리라고 눌러주는 것이라고 한다.
버스차장 이야기는 나도 건너온 시간인데 결이 한결 따듯하다.
치열하게 살아낸 나날이 배경으로 짐작된다. 가끔 과음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슬몃 웃음짓게 한다. 보기드문 '바른생활인'이다. 세무전문가로서 전해주는 정보도 새롭고 배울만한 점이 많다.
지나온 시간과 나아갈 시간이 모두 축제임을 곁에서 이야기하듯, 나직히 깨달음을 전한다.
박인목 작가가 변함없이 전진, 또 전진할 시간들이 기대된다.
* 유비의 촉나라가 제갈공명이라는 뛰어난 지략가를 가졌음에도 조조의 위나라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조가 제도에 의해 국가를 경영한 반면, 유비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여 국가를 경영하려 했던 것에 연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좋은 세금 제도의 도입으로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점을 알고부터, 젊은 시절 만났던 조조와 지금의 조조는 상반된 캐릭터로 나에게 다가온다. (81쪽)
*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한 자원이라고 한다면 가장 아까운 시간은 '실패한 시간', 즉 잘못 선택한 것에 쓴 시간일 것이다. 쇼핑에서도 마찬가지로 실패한 쇼핑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 때문에 '실패 소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하우가 등장하게 되었다. <디토 소비> (146쪽)
* 정곡이란 말에도 숨은 뜻이 있다. 정正은 몸집이 아주 작은 새인데, 매우 빠르고 영리해서 화살을 쏘아도 좀처럼 맞추기 힘들다고 한다. 곡鵠은 고니를 뜻하는데, 고니는 아주 높고 멀리 날기 때문에 이 역시 화살을 쏘아 맞히기가 참 어렵다. 그만큼 과녁의 한복판은 맞히기가 어려우므로 맞히기 힘든 두 새의 이름을 따서 정곡이란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180쪽)
* '봉고차 표 화분'은 그날로부터 우리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대문에 아크릴판에 내 이름 석 자를 달았고, 둘째에게도 '경사의 원천'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켄차야자에게도 '켄야'라는 근사한 이름을 선사했다. ... 켄야와 함께한 세월은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정도로 훌쩍 지난 셈이다. (201쪽)
* 사실 켄야의 이미지는 이파리를 빼면 할말이 없을 정도이다. 이파리들은 큰 키에 알맞은 넓이로 조화롭게 줄을 선다. 이파리들은 몸통은 여유롭지만 끝은 창처럼 예리해서 서슬이 보통 아니다. 긴 줄기 끝에 학의 깃털처럼 퍼진 여덟 개의 이파리 묶음을 보면 영락없는 제갈공명의 부채살 같다.
학우선 여덟 개가 펼쳐진 것처럼. 천하의 지략가 공명도 동남풍을 불러올 때나,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거문고 하나로 허세를 부릴 때는 학우선을 조용조용 흔들면서 표정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202쪽)
* 젊은이들이 세상사는 희망이 있어야 출산율 세계 최하위라는 오명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위정자들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나라 장래를 멀리 내다보고 정해야겠다.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어디 사세요?" 보다 "꿈이 뭡니까?"라고 물어보는 소개팅 자리로 언제쯤 되돌아갈 수 있을까.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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