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계속되는 생일주간.
최 동지와 문선배님을 만나 '어가일식'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요즘 너무 과식을 한다.
서현 천장 높은 카페에 갔는데 자리가 없다. 어쩌면... 월욜인데. 합석을 하다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선물을 잔뜩 받고... 또 황송
6/11
막내고모님 요양병원 문병을 다녀왔다. 남편, 시누와 함께.
고모님은 다리를 수술해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는데 맑은 얼굴이다. 우리 줄 음료수도 챙겨오시고,
정신이 맑으셔서 다행이다.
운정역에서 만나 함께 간 작은아버님을 만나서 올때는 도곡동에 내려드리고.
새벽에 일어나 전복죽을 끓이고, 이것저것 챙겨갔다. 내 맘 편안하자고.
6/14
중딩친구 조정숙 부부와 함께 '갯마을'에서 저녁 식사,
소맥에 발동이 걸린 남편이 맥주를 더 마시겠다고 해서
우리집으로 와서 2차를 했다. 캔맥주 3개 마시고 과일 먹고 이바구~~
오이지, 서리태와 화장품세트를 받았다. 늘 이맘때 이 친구는 오이지를 담아서 준다.
고맙다.
실감나지 않는 칠순을 서로 축하~
6/15
오우가 친구들에게 '수미원'에서 생일 턱을 냈다.
2층에서 옷구경하며 친구는 옷을 사고, 나는 머플러를 사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아, 난 이번에 선물을 많이 받기도 했고, 셀프 선물도 많이 했다.
없어도 되는 신발과 옷을 몇 개 샀다. 책도 잔뜩 샀다. 그럼 그럼~ 칠순이라지 않는가. ㅋㅋ
좀 서둘러서 2시 반에 친구들과 헤어져 권 동지를 픽업해서 수원에 갔다.
약속하지 않은 반가운 사람도 만나고~
토욜, 두 탕을 잘 소화했다.
월하오작 카톡에 떴다. 김미옥 선생이 올린 글이다.
2층 <책고집> 재소자와 노숙자에게 인문학 강의를 한단다. 멋진 공간이다.
그들 중에 공무원이 된 사람이 있단다. 인문학이 힘을 발하는 세상으로
편안한 노래로 시작
오늘의 주인공, 박현택 선생
호가 허당, 허당보다는 고집있어 보이는데..심지있어 보이는 허허실실~ .
'주류에 반항하는 丙'이라니
힘을 실어주고 싶은
<미오기傳>의 김미옥 선생
반가운 미루샘~~
<미루님이 페북에 쓴 글 1~ 4편 중 3>
밑줄긋기, 박물관에서 서성이다(박현택 저)ㅡ3
ㅡ흑산의 자산
다만 흑黑이 숨막히게 캄캄하다면 자玆는 어둡지만 깊고 뭉근한 것이리라.
손암은 굴러 들어온 돌이었지만 끝내 흑산에 뿌리를 내려 흑산의 자산이 되었다. 흑산은 창대와 정약전과 그 섬사람들의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나 현실에서 만족을 구하는 사람이나 힘겨운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같다. 김훈이 소설의 끝에서 말했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
삶은 피할 수 없는 목적이고 과정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견디고 버티는 것이다. 영화 <자산어보>의 도입부에서 정조도 말했다.
“버텨라.”
ㅡ 그 꽃을 보지 못했으면 그뿐(범어사 격자매화 꽃살문)
법당 입구를 장엄하는 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국의 여러 사찰에는 제가끔 특색 있는 꽃살문들이 있다. 최고의 꽃살로 누구는 내소사의 대웅보전, 누구는 용문사의 윤장대, 누구는 성혈사의 나한전 등을 꼽는다. 모두 빼어나고 아름답지만 나는 범어사의 매화꽃살이다.
어느 봄, 금정산 기슭의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는데 바람을 타고 부처님의 성전에까지 날아들었다. 든든한 격자살이 교차하는 부분에 가지런히 조각된 매화는 단청이 퇴화되어 녹색의 흔적만 간신히 남았지만 여전히 앙증맞은 자태다. 관조스님은 “꽃살문에는 가장 행복한 삶의 환경인 극락세계의 아름다움이 표현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경하게도 단청이 되어 있다. 관조스님이 포착한 그 매화가 아니다.
아쉽지만 양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에서 엇비슷한 느낌을 볼 수 있다. 그곳은 아직 재단청 작업이 되지 않은 상태로, 비바람에 시달리며 세월을 담아가는 나무 꽃살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창호지를 투과한 고요한 빛, 천천히 스며드는 아름다움을 만나고 싶다.
모든 것은 없어진다. 희미한 흔적이라도 남나 싶지만 끝내 사라진다. 아름다움은 그때,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시가 탄생하는 순간과도 같다. 찰나의 섬광처럼! 그때가 아니면 다시 그렇게 빛날 수 없는 날카로운 한 순간을 완성한다. 봄이 오면 꽃은 피고 지지만, 그때 그 꽃을 보지 못했으면 그뿐....
ㅡ 야野해서 좋다
그림이란 표현과 내용의 합이다. 조선 민화는 아마추어인 서민이 아니라 대체로 화원이나 화승들이 그렸다. 즉 표현은 프로들의 역할이었다 해도 그 안에 담긴 것은 민중들의 원망과 사고체계이다. 그래서 민중의 그림이라는 개연성이 성립된다. 여기서 민중이란 서민만이 아니라 사대부, 귀족까지 ‘누구나’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민화의 예술적인 책무는 ‘협객’이 아닐까? 태생과 성장이 그러했듯이 민화는 강호와 들판을 서식지로 하는 외톨이다. 그래서 그 표현 또한 ‘야野’하다. 세련된 도회의 정서가 아니어서 촌스럽다. 협객은 성인의 벼슬를 탐하지 않으며 성 안의 장수들과 누가 더 센지 겨루지 않는다. 자신의 명분을 침해하는 자가 나타났을 때만 기꺼이 나설 뿐이다.
ㅡ 의자 인간
창조란 인간이 자연과 환경을 ‘해석.변형’하는 과정이다. 창조적 행위는 물질의 본성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부터 시작하며, 마침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낸다. 감성을 기반으로 용도와 기능에 맞게 물질을 변형시키는 행위가 ‘디자인’이다. 똑바로 서서 걷는 인간은 결국 ‘의자 인간’이었다.
ㅡ 불을 담다
전등 디자인은 전등의 외관을 꾸미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러나 그릇은 껍데기일 뿐, 궁극적으로는 ‘어떤 빛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 빛을 담는 그릇은 어떠해햐 하는가?가 핵심이다. 빛은 공기나 물처럼 우리 주변에 늘 있지만, 만져볼 수 없다. 그러나 빛이 없다면 사물의 형상도 공간도 인지할 수 없기에 희미하게라도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면 빛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간은 공간 속에서 흐르고, 공간은 빛에 의해 지각된다. 빛은 시간과도 연계된다. 시대가 바뀌어도 공간과 시간의 변주에 의해 세계가 구축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은유하는 빛, 불을 담은 빛의 디자인은 영원하다.
예기치않게 홍샘을 만나 반가웠다. 남편과 친구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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