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599

이 여사의 행복카페 / 이영옥

를 익일특급으로 받았다. 나도 특급 대접으로 바로 읽기 시작했다. 딱히 급할 것도 없는데 밤새 다 읽었다. 첫 작품에서 덜컥 걸렸다.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찾아보았다. 과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찾을 수 없다. 승승장구하던 39세의 남편이 비인강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투병하는 모습이 론다니니의 피에타에 겹쳐보인다. 자신보다 시어머니의 지극한 마음을 헤어리며 감정이입이 된다. 젊어서 치른 큰 사건은 부부의 결속을 다지는 거름이 된듯 하다. 작가의 반듯하고 성실한 면모가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남편이 해외근무를 하는데 함께 가지 못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두 딸을 키우며 살았다. 치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함께 모시는 시간조차도 행복한 위트로 버무렸다.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 너머의 ..

놀자, 책이랑 2024.01.27

교양인의 서양건축사 / 이민정

교보문고 알림이 왔다. 선물을 수락하고 주소를 입력한다. '지적대화를 위한 교양인'의 서양건축사다. 해운대 류선생의 선물이다. 작가 이민정은 류선생의 '우리 민정이'다. 공자를 가르치는 선생은 아들의 짝을 그리 부른다. 건축과 예술, 문화를 삶의 기반에서 알려준다. 어릴 때 기억을 불러와 다정하게 속삭이듯 풀어낸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태어난 문명과 건축부터 로마, 중세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와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와 근대 건축과 예술에 도달한다. 짐작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사진까지 보며 소상히 알게되었다. 참한 어법이다. ​ ​ * 개인적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도 특히 이 시기, 즉 고졸기 시대의 조각상들을 좋아합니다. 앞서 언급한 쿠로스의 미묘한 차이를 찾아보면서 비교해보는 재미..

놀자, 책이랑 2024.01.25

상처로 숨 쉬는 법 / 김진영

오랜만에 김진영을 펼쳤다. 2018년 그가 떠나고, 2021년에 나온 책이다. '상처로 숨 쉬는 법'이라니, 우리가 가진 게 상처 밖에 없다면 상처를 허파로 만들어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거다. ​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를 정리한 강의다. 부정성으로 말하는 아도르노를 김진영은 여러 철학자와 문학작품을 데려와 친절하게 풀어준다. 아도르노는 부유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이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신동 소리를 듣고 자라 일찍 교수가 되었다. 유태인 박해가 일어나려 할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와서도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가 되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68학생운동 때 "강의실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실천이다"고 하며 혼자 꿋꿋이 강의 하며 이론과 실천을 동일시 했으나, 격렬(?)..

놀자, 책이랑 2024.01.20

몸짓 / 김응숙

김응숙 작가의 '몸짓'은 어떤 춤보다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자신을 재료 삼아, 골골 진국을 뽑아냈다. 조미료 없이 낸 깊은 맛에 홀려 거듭 찾게 되는 맛이다. 마냥 담백하지 않다. 재료 자체가 특별하다. 눈물씨앗으로 진주를 빚었다. 한 줄 한 줄, 아니 한 자 한 자 땀으로 써내려간 글이다. 피라고 해야할까. 신산한 기록이 은유의 강을 넘실댄다. 곧 포용의 바다에 이를 것같다. ㄱ선생이 ㄹ작가에게 했다던 말이 떠오른다. "너의 불우가 부럽다" 작가에게 불우는 재산이다. , , , ... 낯익은 작품에도 거듭 감탄한다. 저자가 '두 손 모아' 건네 준 책을 읽으며 나도 두 손을 모으고 깊이 고개숙인다. ​ ​ ​ * 두 귀에는 저 멀리 아득한 은하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가득했다. 두 ..

놀자, 책이랑 2024.01.13

당신은 오월을 닮았군요 / 박은실

쉰한 번의 봄을 넘긴 작가 박은실은 "당신은 오월을 닮았군요" 언젠가 이런 말을 꼭 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첫 수필집이 야무지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큰할머니가 등장하는 가족사도 시선을 끌어당긴다. 큰 상처 없이 소소한 일상이 작품으로 등장할 때 필요한 것들을 잘 장착했다. 공부하며 쓴 수필, 독자에게 다가가는 궁리를 하면서 쓴 수필이다. 단숨에 읽히는 장치, 위트와 유머도 있다. 오월처럼 연둣빛 해사한 작가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 믿음직스럽다. 박수보낸다. ​ ​ * 자신이 값비싼 생선인 줄 아는 도마 위 여자는 오만상을 쓰며 나처럼 저분의 거울이 되어가고 있었다. 돌덩이 대접을 받는 여인에게 강한 동류의식을 느꼈다. 나는 입꼬리가 귀까지 말려 올라가도록 고소한 웃음을 지었..

놀자, 책이랑 2024.01.09

그리움 쪽에서 겨울이 오면 / 배귀선

배귀선 선생은 여자인줄 알았는데 남자였다. 그제 출판기념에서 만나고, 첫 수필집을 찾아 읽었다. ​ 호쾌한 모습을 보였는데.. 글에서 보니 선생는 술이 약하다. 섬세하고 속정도 깊은 듯. 안타까운 서사를 거쳐 지금은 안정권에 든 듯하다. 상처없는 삶은 없고, 상처가 글쓰는데 재산이라는 건 확실하다. '봉인된 서러움'을 털어 놓아, 스스로 치유되고 위로받는다. 장하게 지나온 시간에 박수보낸다. ​ 표제작 을 읽으며 난 실소를 했다. 지지난 겨울인가 절친들과 둔내에서 1박을 하고 다음씨가 기막히게 맛있는 곰치국을 먹어야 한다면서 속초까기 안내했다. 한 그릇에 3만원인데 머릿수대로 시켜야 하고, 그것도 현금결제만 해야한다는 식당이다. 깊은 맛도 모르고, 폭력에 가까운 모양새와 양에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 ..

놀자, 책이랑 2024.01.07

성남문예비평지 <창> 15호

비평지 15호가 나왔으니 올해 일이 제대로 끝났다. 이번에는 원고때문에 노심초사하던 시간이 길었다. 김태헌 샘이 편집장을 내려놓은 마음이 헤아려진다. 원고마감에 딱 딱 맞춰서 후다닥 끝내야 하는 내 성질머리가 문제인지.... 어쨌거나 올해 안에 발간되었으니 다행이다. 아, 이 책은 성남시에서 기금을 받아서 성남시의 문화예술정책에 비평을 한다. 예전에는 강도 높은 비평을 해서 공무원들이 긴장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제대로 된 비평 글을 쓰는 사람이 줄었다. 개선의 여지가 없으니 포기하는 건지, 찍히기 두려워서 숨는 건지... 기금으로 만드는 비매품이다. 관공서에 비치한다. 나름 보람된 작업이다. ​ ​ 박설희 시인이 쓴 '관동대지진 100주년' 보고서다. 함께 한 4박5일의 현장과 소회를 ..

놀자, 책이랑 2023.12.27

몸의 일기 / 다니엘 페나크

겨울호에 추선희 선생 리뷰를 읽고 주문했다. 그는 '우리의 길동무, 몸' - 가 몸을 거쳐 마음으로 길을 내고 그 마음이 지나는 몸을 다시 보게 된다고 했다. 책은 비닐로 꽁꽁 밀봉을 해서 왔다. 의아해하면서 포장을 풀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몸과 마음을 떨어뜨려놓고 바라보던 글을 제법 썼다. '몸의 말'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벌써 다가왔지만 아직 경청하지 않는 나를 돌아본다. 12세 11개월 18일에 시작해서 87세 19일, 눈감을 때까지 몸을 중심으로 쓴 남자의 비밀일기다. '사랑하는 리종에게' 일기장을 딸에게 남기면서 당부하는 마음이 중간중간 나온다. 장편소설을 난 또 수필처럼 읽었다. 몸이 이울어가는 시기에 만나서 일까. 몸의 변화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은 내게 위안을 주었다. 거침없는 열정의 시간..

놀자, 책이랑 2023.12.26

고독한 기쁨 / 배혜경

촘촘했던 연말 모임이 헐렁해졌다. 바로 숙제에 돌입했다. 연말에 밀려온 책들을 잡았다. '고독한 기쁨'은 내게 '즐거운 숙제'가 되었다. ​ 첫 책 『앵두를 찾아라』부터 눈길을 끌며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중상을 입은 몸으로, 책과 영화에 몰입하는 모습은 경건한 그림이다. 서툰 못질 없이, 제 몸으로 연결하는 장인처럼 책과 영화, 몸이 변화를 자연스레 엮었다. 내가 못 읽고 못 본 영화가 훨씬 많지만, 내가 읽은 책과 영화는 반갑게 만나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잔과 에밀졸라 이야기는 그림 그리는 친구와 주변 예술가들을 생각하며, 더 다가왔다. 내가 두 번 다녀온 삼척의 부남해변에서 저리 풍성한 감성을 쏟아놓다니 ... 내가 놓친 풍광을 새로이 만나며 감탄한다. 속깊은 문장과 주문할 책과 보고 싶은 영화..

놀자, 책이랑 2023.12.22

보랏빛 함성 / 조한금

지난 달에 받은 책을 이제사 읽었다. ​ 조한금 선생의 팔순 기념 네 번째 책이다. 잘 살아오신 이력이 다 수필인데 사실그대로가 자랑이 되고도 넘친다. 이럴때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가 신앙심인듯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민감하며 역사의식도 열려있다. 30년 전 장수로 귀농하여 귀농의 모범을 보인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집필과 봉사를 한다. 은 신앙인으로서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글쓰기를 하며 영육의 건강을 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 ​ * 설날 하면 가난했던 어린 날이 소환되어 온다. 엄마가 안 계셔서 때때옷 한 번 못 입어 보고 자랐다. 빨갛고 파랗게 입는 것은 기생이나 하는 짓이라며 오로지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만을 고집하신 아버지는 "곱게 놀아아, 높이 놀아라!"만 주문하셨다. (..

놀자, 책이랑 2023.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