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이 여사의 행복카페 / 이영옥

칠부능선 2024. 1. 27. 22:41

<이 여사의 행복카페>를 익일특급으로 받았다. 나도 특급 대접으로 바로 읽기 시작했다. 딱히 급할 것도 없는데 밤새 다 읽었다.

첫 작품에서 덜컥 걸렸다.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찾아보았다. 과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찾을 수 없다. 승승장구하던 39세의 남편이 비인강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투병하는 모습이 론다니니의 피에타에 겹쳐보인다. 자신보다 시어머니의 지극한 마음을 헤어리며 감정이입이 된다. 젊어서 치른 큰 사건은 부부의 결속을 다지는 거름이 된듯 하다.

작가의 반듯하고 성실한 면모가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남편이 해외근무를 하는데 함께 가지 못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두 딸을 키우며 살았다. 치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함께 모시는 시간조차도 행복한 위트로 버무렸다.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 너머의 감정이 헤아려진다.

행복카페에서 작가의 긍정 에너지를 만나는 일이 그리 급했나보다. 작가가 곁에 있다면 "장하세요. 잘 살아왔어요." 하며 안아주고 싶다.

* 스푸마토가 관람자의 머리속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라면 이중섭 역시 일종의 스푸마토 기법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부감법으로 관람자의 시선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주어 작품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하게하는 것 말이다. (29쪽)

* '나는 인류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흐가 죽는 순간까지 붙잡았다던 명제이다. 그가 인류에게 주고 싶다던 도움이 혹 그가 염원했던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에 닿는 것이라면 나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한파 몰아친 추운 겨울날 이 유채화 앞에서 이리 따뜻해지니 말이다. (35쪽)

* 밤 9시에 시작한 천팔십 배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고 열 명 남짓한 인원만 남았다. 나도 그 속에 끼어 법당을 나왔다. 하늘 가득 새벽 별이 시원하게 빛나고 있었다.

절뚝거리는 나를 숙소까지 부축해 주던 선배가 물었다.

"영옥이는 처음이었을 텐데, 중간에 쉬면 못 일어난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 모르겠어요. 본능인가 봐요. 전 본능에 충실하거든요."

씨익 웃었다.

그때 숙소까지 부축해주었던 선배는 지금 남편이 되어있다.

"일어나, 힘들어도 지금 일어나!"

오랫동안 잠자던 본능이 몸속에서 끔틀대기 시작했다. 사력을 다해 자판 위에 떨리는 두 손을 올린다. 다시 한번 시원하게 빛나는 새벽 별을 보아야겠다. (129쪽)

* 그러고 보니, 그들과 우리 부부는 닮은 것 같았다. 굴거리가 바람을 막아주듯 남편은 온몸으로 외풍을 막아내는 가장으로, 나는 꽝꽝나무처럼 잘 참고 견뎌내는 아내로 새잎을 가꾸며 열심히 살아왔다. 부부는 어느덧 인생의 봄과 여름을 지내고 이제 갈무리하는 계절에 들어섰다. (189쪽)

* 막판까지 몰고 가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은 없다. 풀고 싶은 싸움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이다. 쓰린 눈을 비비며 다시 책을 펼쳤다.

 

손빈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상대방의 무방비 상태의 허점을 칠 때 싸움은 자연 풀립니다." (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