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상처로 숨 쉬는 법 / 김진영

칠부능선 2024. 1. 20. 00:39

오랜만에 김진영을 펼쳤다. 2018년 그가 떠나고, 2021년에 나온 책이다.

'상처로 숨 쉬는 법'이라니,

우리가 가진 게 상처 밖에 없다면 상처를 허파로 만들어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거다.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를 정리한 강의다.

부정성으로 말하는 아도르노를 김진영은 여러 철학자와 문학작품을 데려와 친절하게 풀어준다.

아도르노는 부유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이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신동 소리를 듣고 자라 일찍 교수가 되었다. 유태인 박해가 일어나려 할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와서도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가 되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68학생운동 때 "강의실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실천이다"고 하며 혼자 꿋꿋이 강의 하며 이론과 실천을 동일시 했으나, 격렬(?)한 여학생의 비난을 받고 놀라 강의를 그만 둔다. 얼마후 스위스에 휴양을 간다. 그곳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어찌보면 낭만적 죽음이다. 고통없이 한 번에 가는 행복마져 누렸다.

분명함, 정직함, 자명함을 중요시하는 개념적 사유를 하려했던 사람이다.

* 서문에서 보시면 대자적 삶과 즉자적 삶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헤겔의 변증법적 용어예요. 대자적이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나예요. 내가 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나, 자유롭고 행복하고 그 무엇에 의해서도 억압받지 않으며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 누구와 비교해도 꿀릴 것이 없는 나, 나아가서는 나의 목적을 실현해가고 있는 꽤 괜찮은 나를 얘기합니다. 라캉식으로 얘기하면 상상적 자아예요.

즉자적 자아도 있어요. 즉자적 삶은 그것 자체를 보았을 때 말할 수 있는 삶이에요. 그런데 대자적 삶이 즉자적 삶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즉자적 삶에 대한 질문 자체가 불가능해요. 뭘 더 물어봐, 바로 이게 나야,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긍정하게 만들고 수긍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허위의식으로 가득 참 삶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 현대사회의 시스템이죠. (102쪽)

* 우리가 무엇이든 언어화를 시키면 그것이 객관화되죠. 언어는 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지배할 수 있어요. 말하고 나면 시원하다 그러잖아요? 이렇게 쉽게 언어화될 수 있는 상처가 있고, 거의 언어화가 될 수 없는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는 후자를 트라우마라고 부르죠.

트라우마가 왜 언어화될 수 없느냐 하면 두려움 때문이에요. (191쪽)

* 살 만한 사람들의 자선이 그 자선의 경제적 근거와 그로부터 작동하는 음함한 포력을 슬그머니 도외시하면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선택받은 그들만의 삶을 현 상태로 유지시키면서, 그렇게 유지되는 불평등한 삶의 구조 안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못사는 이들도 겨우겨우 살아남게 만들려는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 - 아도르노 (296쪽)

* 배려는 거리를 줄여서 내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이 아니죠. 차이를 존중하고 거리를 지켜주는 겁니다. 거리를 지키면서 대화를 하고 서로를 재인식하는 과정이 배려와 위안인데 우리는 우월감이 앞서 있어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배려를 말하는데 이것은 권력적인 현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332쪽)

* 예술은 그 권력 장치의 뿌리 깊은 속성을 탈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예술이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하는 척하면서 제도성 안에 안주하려 해요. 해술은 근본적으로 실험과 저항인데, 이 실험과 저항이 어는 사이엔가 제도화 되어서 실험과 저항이라는 것마저도 이미 문화화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이러한 문하에 대한 성찰 엇이 거기에 소솏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저항한다고 착각하는 예술가들은, 결국 기존 문화 권력의 역할을 수행하는 첨병이 될 수밖에 없어요. (379쪽)

* 격렬한 고통이 육체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처럼, 실연의 고통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나에게 사랑에의 권리가 있다. 그것 당연하다. 그러나 그 권리를 나의 것으로 타자에게 주장하고 요청할 권리가 나에게 있는 건 아니다. 이것이 사랑의 정의 안에 내재하는 비밀이다. (561쪽)

* 불면의 시간은 우리를 성찰로 부르는 시간이에요. 불면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불면의 목소리는 자라 자라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나라 깨어나라는 것이죠. 그런데 다들 깨어나지 않고 자려고만 해요. 불면증을 겪어본 사람을 다 알아요. 자려고 하기 때문에 잠이 안 와요. 자야 된다는 강박만 없으면 잠이 올 것도 같은데 잠을 자야 된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죠. 이 집요한 생각 때문에 잠이 오고 싶어도 문지방을 건너올 수가 없어요. (642쪽)

* 진품에 매달리는 상류계급니나 짝퉁을 들고 다니려는 사람들이나 다 같이 가지고 있는 현상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자율성이 없다는 거예요. 그것 아니면 자기를 증명해낼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바로 취향과 사치가 없습니다. 자기만의 다름을 얘기할 수 있는 취향과, 그 무엇과 비교될 수도 없고 얻에도 쓰이지 않고 자기에게만 중요한 사치라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아도르노가 얘기했어요. "사치에서 사치가 빠져나간다. 취향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무취향이다" 이것이오늘날 취향과 사치의 몰락이라 볼 수 있습니다.

(706쪽)

* 삭제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길이는 아무래도 좋다. 분량이 너무 적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유치하다. 일단 써졌으니까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몇몇 문장이 동일한 생각을 변주하는 건 생각이 또렷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 글이 끝났을 때 전체 구성을 완벽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그렇게 버려진 생각들이다. 식탁에서처럼 마지막 한 입은 먹지 말아야 하며 마지막 술잔을 바닥까지 마시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만 바닥을 보이고 만다. (725쪽)

* 아도르도가 《미니마 모랄리아》라는 에세이를 통해 궁극적을 얘기하려는 것은 이거예요. 바로 나의 상처로부터 해방이 되려면 이 사회적인 상처를 볼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죠. 객관적 권력이 만들어내고 있는 상처를 통해 그 객관적 권력을 알아봐야 하고, 그것이이루어질 때 나의 상처도치유될 수 있다는 거예요. 객관적 권력에 대해 성찰하지않고 사회적인 상처에 민감하지 않으면서 내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찾는다면, 아무리 찾아봐도 상처는 절대로 허파가 되지 않습니다. (754쪽)

 

수욜 <더수필> 수업할 때 호명되었던 손창섭을 만나 반갑다. 책이 책을 부른다. 

두껍고 단단한 장정에도 불구하고 가독력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