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달리지 馬 / 오봉옥 웹툰시집

칠부능선 2024. 3. 1. 14:06

오봉옥 시인이 웹툰시집을 냈다. 시와 웹툰의 만남이다.

크로스오버 시대를 거쳐 윈윈하는 콜라보 시대다.

시와 웹툰이라니, 새롭다.

시를 읽으며 사색에 빠져야 하는데 혹시 만화같은 그림이 방해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괜찮다. 그림 사이, 행간에서 멈추게 된다.

웹툰시집 시대, 이제 시작이다. 이런 작업으로 시 독자가 넓어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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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옥 웹툰시집

사랑은 경주마처럼 2

경주마처럼 그대만 보고 달려가리

화살처럼

번개처럼

그대의 가슴에 가 꽃히리

가서 히이이잉 대책 없이 무너지리

아름다운 망각

지하철에 올라 내 나이 잠시 잊어먹고 머리 희끗한 한 아주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더니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양반이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정색을 하며 나무란다

난 그만 머쓱해져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슬 쩍 한번 비춰보다가 자리를 얼른 피하고 말았다

이순

스무 살이 되어 서울역 앞 대우빌딩 보며 생각했지

나 저렇게 부를 쌓고 살리라

서른 살에 대우빌딩을 보고는

나 이 세상 책 다 읽어 저렇게 높이 한번 쌓아보리라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대우빌당을 보고는 또

남은 生 덕이나 쌓으며 살자고 다짐했는데

예순이 되어 가니

뭔가를 쌓고 산다는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런 내 자신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말없이 하는 다짐 하나,

그동안 쌓은 거 다 내려놓으리라

아름다운 사람

벗이 보내준 일출 사진을 보고

아름다운 일몰이라 착각해

나도 저렇게만 저물어가고 싶구나, 했더니

넌 왜 벌써부터 저승 타령을 하느냐고 나무란다

글쎄, 언제부터였나

막 태어나 응애응애 울어댈 때

아랫마을 무당이 죽음의 그림자를 읽고는

배겟머리에 부적을 떡 붙여줬다는데

그때부터였나

나는 삶보다 죽음을 꿈꿔왔다

조금이라도 더 멋지게 죽고 싶은 꿈

일출같이 눈부시지는 못하더라도

일몰같이 장엄하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잠시 잠깐이라도 숙연해지게 만드는

그런 죽음

그리하여 죽은 뒤에도

내 살붙이들에게 이런 말 꼭 듣고 싶었다

아빠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고전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