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붓다의 길을 따라 / 맹난자 23 외 23인

칠부능선 2024. 3. 16. 16:40

<현대불교> '불교인문학살롱' 에 연재했던 글을 '연암서가'에서 묶었다.

저명한 분들과 공저에 그냥 숟가락을 얹었다. 다시 읽어보니 내 글은 여전히 버벅거리고 있다.

몰랐던 것을 만나 반갑고,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많다.

* 나귀 가죽을 한 줄로 요약하면 '과도한 욕망과 애욕은 삶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이다. 주인공 라파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자신이 꿈꾸었던 감각적 쾌락과 방탕한 생활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나귀 가죽은 현대판 로또와 같다. 로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발자크는 강력하게 어깃장을 놓고 있다. (53쪽)

* 붓다는 연기의 법칙을 깊이 이해하면 '자아의 비어 있음'으로서의 무아를 깨달아 자신과 타자의 상호 연관성을 경험하면, 세계와의 단절감이 사라지며 이기적 욕망과 공격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보았다. 흄의 해방과 붓다의 자유 사이에는 통하는 점이 있다. (64쪽)

* 불교와 마르크스는 인간이 처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해방이 시대나 사회 경제체제의 제약을 초월하여 인간의 실존적 굴레를 벗어난 해방이라면,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해방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조건 지어진 상황에서의 해방이라는 차이가 있다.

... ... 현재 상항을 보면 마르크스의 방식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구조의 변화만으로 인간 욕망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방법들이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실패했지만,그의 분석은 여전히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직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73쪽)

* 형이상학적 관념 대신 몸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을 파고든 해체주의는 세인들에겐 낯설었고 철학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새내기 철학가의 진지한 인간탐구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저자가 제도권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한 번 펼쳐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받는 데는 기여한 셈이다. 책이 출간되던 다음 해 1820년 쇼펜하우어는 베를린대학 철학과의 객원강사로 부임했다.

... .... 허무를 완성하는 길만이 허무를 극복하는길이라면, 『우파니샤드』에서 구원을 본 사람은 쇼펜하우어뿐이 아닐 터다. (82쪽)

* '동물 - 되기'란 실제로 동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감각을 변용시키는 것이다. 여성 - 되기, 흑인 - 되기는 여성이나 흑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식적, 백인 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 공생의 관계로 감응하여 나가는 것이다. ... 하물며 우리 마음이야, 이미 '부처 - 되기'에 연결돼 있는 것 아닌가. (91쪽)

* 동은이 경허에게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소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경허는 활연대오豁然大悟, 물아物我가 공한 도리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육신을 초탈하여 이떠한 일에도 걸리지 않는 대자유를 깨달았다. 경허는 이 순간을 오도송으로 읊었다.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 대천 세계가 다 내 집이로구나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 사람 일이 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129쪽)

천왕문 밖 언덕에는 1983년 문인들이 세운 매월당 시비가 서 있다.

시비 앞에 서니 그의 <낙엽>이라는 시 한 수가 떠올랐다.

떨어지는 잎이라고 쓸지를 마오

맑은 밤에 그 소리 듣기 좋다오

바람이 불어오면 서걱서걱 소리 나고

달이 떠오르면 그림자 어수선해라

창을 두드려 나그네 꿈 깨우기도 하고

섬돌에 덮여 이끼 무늬도 없애네

빗줄기 선 듯하면 어찌할 수 없기에

먼 산에 그 모습 한껏 여위었어라

(242쪽)

-알라딘에서

책소개

인문학은 인간이 바로 서는 데 기본이 되는 지침(指針)의 학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도덕성이 상실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물질주의를 극복하는가? 이 같은 과제를 앞에 두고 문학, 역사, 철학에 기반을 둔 스물네 분의 문자 반야(文字般若)가 모였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백거이, 잭 케루악, 게리 스나이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오노레 드 발자크 등 ‘불교로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린 작가들’이 소개되고, 2부 ‘붓다와 서양 철학자’에서는 데이비드 흄과 카를 마르크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질 들뢰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견해를 경청한다. 3부 ‘지혜 반야의 길’에서는 역사적인 인물 스즈키 다이세쓰, 향곡선사, 경허스님, 선각자 이탁오와 허균의 발자취를 짚어보고, 4부 ‘마음에 녹아든 경전의 말씀’에서는 『반야경』, 『화엄경』, 『유마경』, 『승만경』, 『숫타니파타』의 말씀을 듣는다. 5부 ‘수필로 쓴 나의 구법기’에는 봉인사, 무량사, 부탄 등지에서 체험한 구법기(求法記)를 실었다.

목차

책을 열며: 문자 반야를 뗏목으로

제1부 불교로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린 작가들

1. 사나 죽으나 별반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노라: 백거이의 삶과 문학 세계_유한근

2. 전후 미국의 정신을 바꾼 작가: 잭 케루악과 불교_김호주

3. 시어로 녹여낸 선(禪)과 생태주의: 게리 스나이더와 불교_정약수

4.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리다: 샐린저와 선(禪)적인 깨우침_박양근

5. 탐욕에서 벗어나라: 발자크와 불교_문윤정

제2부 붓다와 서양 철학자들

6. 우리의 지식은 인상의 감정에 불과하다: 흄의 해방과 붓다의 자유_김은중

7. 삶의 고통에서 해방하라: 마르크스주의와 불교_지혜경

8. 인도 철학을 서구에 알리다: 쇼펜하우어와 『우파니샤드』_홍혜랑

9. 부처의 나무는 그 자체가 리좀이 된다: 질 들뢰즈의 ‘차이 생성’과 ‘연기론’_송마나

10. 중관(中觀) 사상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 비트겐슈타인과 불교_맹난자

제3부 지혜 반야의 길

11. 서구에 선불교를 알리다: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의 삶과 학문_이광준

12. 중이 할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다: 향곡선사(香谷禪師) 일화_법념

13. 무애행, 대자비심의 발로: 경허스님의 무애행_임길순

14. 선각자는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 이탁오와 불교_노정숙

15. 깨우치니 삼라만상이 모두 공(空)이더라: 허균과 불교_맹난자

제4부 마음에 녹아든 경전의 말씀

16. 현명한 지도자와 지혜의 완성: 『인왕경』_김태진

17. 우리 인생은 개인 몫만 아니다: 『화엄경』 만난 인연_황다연

18.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침묵으로 설하다: 내가 만난 『유마경』_성민선

19. 불국토를 지향한 군주: 『승만경』과 진덕여왕_정진원

20. 사시사철 초목이 보이는 순환의 진리: 자연의 시계와 『숫타니파타』_박순태

제5부 수필로 쓴 나의 구법기

21. 번뇌의 불꽃 일으키며: 『화엄경』과 소소 일상_조정은

22. 세상 전체가 ‘나’임을 알았다: 나의 간화선 실참기_백경임

23.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허상이었다: 봉인사(奉印寺)에서_김산옥

24. 부탄에서 환생을 생각하다: 연기법에 대해_이명진

25. 무량사에서 만난 매월당의 시혼: 김시습의 불교와 문학_김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