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빛, 이름에 어울리는 표지다.
단숨에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 화사한 봄빛이 그냥 온 게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 묵직한 울림이 남는다. 7살에 척수신경염을 앓고 전신마비가 되었다가 서서히 회복했으나 다리가 불편하다. 부모님의 지극한 보살핌과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밝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사랑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배려깊은 남편과 아들, 딸도 잘 큰 듯, 맥시코 여행길에서 엄마가 흥정하다 놓친 은묵주를 엄마 잠든 시간에 나가 사다가 가방에 넣어둔 아들 이야기에 가슴이 뜨듯해진다. 속깊고 반듯하게 잘 자란 청년일게다.
소소한 일상이 구김없는 시선을 통해 펼쳐지는데 잘 읽힌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스스로 '오지라퍼' 라며 주위에 배려하는 모습, 소소한 실수에도 금새 반성하는 모습이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독자의 마음을 잡는 건 문학적 장치보다 선한 기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많이 받아 천성적으로 밝고,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장애에 대한 편견을 덜 받은 듯도 하다.
김봄빛 작가의 긍정마인드에 안도의 마음이 들며, 걸림없이 풀어낸 첫 책, 시작이 좋다.
* 신부님이 제대앞 의자에 앉으셨다.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나는 신부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신부님, 저는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내가 겪는 무력감과 우울증에 대해 신부님께 하소연하는 와중에 눈물까지 터졌다. 나이는 어리지만 신부님이기에 의지하고 싶었다.
"당신의 하느님의 딸입니다"
신부님의 짧은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옴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는 다시 그전의 나로 돌아왔다. 하느님의 딸이란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고 비틀거렸었다.
..... 깨닫고 보니 나는 금수저를 능가하는 天수저였다! (47쪽)
* 다리가 불편한 나는 늘 '아찌꼭다리'였다. 몸을 부딪치며 노는 아이들 틈에선 항상 그랬다. '아찌꼭다리'란 말은 우리 동네 아이들이 '깎두기'대신 쓰던 말이었다. 아이들이 두 편으로 나눠 놀이를 할 때 어느 편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은 채 덤으로 노는 아이를 깍두기라 했다.
...
장애를 가진 사람은 평소에도 약자이지만 비상상황에서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바람 앞의 등불이다. 평소에는 기가 펄펄 살아 있다가도 이런 문제 (아파트 화재)에 부딪히면 매번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어릴 때 '아찌꼭다리'라는 이름으로 나를 끼워서 같이 놀아주던 그때처럼, 비상시에도 날 도와줄 거죠? 네? (60쪽)
* 얼마 전, 어떤 기사에서는 한강에서 자유롭게 드론을 날릴 수 있는 구역을 만든다면서 그 구역을 '드론 프리존'이라고 이름 붙인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지... 틀렸다. 드론 프리존이란 드론을 날릴 수 없는 구역이란 말이다. ...
그 말의 진짜 의미도 모른 채 멀리 퍼져 나가면 그게 맞는 말인 줄 알고 다들 그 말을 쓸 거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콩글리시가 탄생된다. 한글로 '드론 비행 구역' 내지는 '드론 날릴 수 있는 곳'이라고 쓰면 좀 좋은가. 틀려가면서까지 구태여 영어로 이름을 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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