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600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 이윤학 산문집

이윤학 시인은 오래 전 로 만났다. 페북에서 신간 소개를 보고 주문했다. 천생 시인인 그의 시 밖의 삶에 맘이 착 가라앉는다. 왜 이리 짠한가. - 작가의 말 한 사내가 떠난 외동 빌라의 끝 층 픽스창, 무수한 내륙등대 불빛이 모여 있었다 지붕 밑 외벽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둥지 밑 폐 전화선에 앉아 서로 거리를 벌리다 좁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기를 반복한 끝에 날이 새고 있었다 오늘은 은둔형 외통이 사내가 떠난 빈집에 들어가 십 년을 살고 나왔다 책 한 권 들고 어둑해진 골목길 어깨 높이 화단 턱에 걸터앉았다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곁에 앉아 언제가 불쑥 부르고픈 노래가 있었다 * 나는 지금껏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샘물은 차오르면서 불순물을 걸..

놀자, 책이랑 2022.07.14

저만치 혼자서 / 김훈

지난 토욜 서행구간에서 사온 책이다. 발행 2주만에 2쇄를 찍은 걸 보니 역시 많이 팔리고 있다. 이후 16년만의 단편소설집이고 보니 산문 쓰던 습인지 끝에 '군말'이 붙었다. 김훈이 이리 친절해진건가. 나는 '군말'이 좋다. 지난 번 이상문학상 수상, 우수상 젊은 작가들의 소설보다 단방에 다가온다. 말하지 않은 것들까지. - 군말 2010년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이영조)는 광복 이후 전쟁과 분단, 개발독재와 군부독재, 유신과 쿠데타의 시대를 거치면서 벌어진 학살과 고문, 인권침해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를 '종합보고서'로 발간했다. ... 이 보고서가 증언하고 있는 범죄는 모두가 군대나 경찰 그리고 검찰과 법원에 의해 자행된 국가 범죄였다. 기소와 재판과 선고의 사법절차를 모두 거친 ..

놀자, 책이랑 2022.07.09

씨줄과 날줄로 맺은 인연 / 유지순

유지순 선배님은 만난지가 25년 전쯤 되는 것 같다. 왕복 다섯 시간 걸려 수필교실에 10년을 다녔고, 만년에 플루트를 배우고, 여주신문 컬럼을 7년을 쓰고... 정년 후 귀농해서 양봉을 하셨다. 양봉에 대한 연구도 깊다. 벌을 자식처럼 지극히 대하는 마음에 감탄한다. 촘촘히 살아온 이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자식에게 물려줄 책이 있다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는 마음과 잘 살아내신 삶에 박수보낸다. *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것들이지만, 나누어 주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것이 시원하기까지 하다. 평생 명품이나 악세서리 같은 것에 별 관심 없이 살았어도 조금도 불편하거나 부럽거나 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나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여자인 것 같다. (100 쪽) * 플루트 선생님과 전화 상의를 하..

놀자, 책이랑 2022.07.07

이상문학상 작품집

동네책방 비북스에서 사온 책이다. 손보미의 수상작 보다 자선 대표작 가 좋았다. 나는, 아무래도 꼰대가 되었나보다. 이 젊은이들의 맹렬한 삶이 피부로 와 닿지가 않는다. 막연한 불안감과 안타까움 뿐이다. 더 나아가 답답한 느낌까지 드는 건 확실히 꼰대마인드인 게다. * 복도 / 강화길 소설을 수필로 읽는 버릇이 있다. 정말? 그런 곳이 있어?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는 폼이라니... 어쩌면 리얼하게 다가오는 탓일수도 있다. 괜한 걱정까지 하면서 몰입해서 읽었다. - 쉬. ... 괜찮지? (183쪽) * 아주 환한 날들 / 백수린 아주 환한 날은 없다. 고단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여유로운 시간이 되었어도 고단한 일상을 계획한다. 촘촘히 짠 시간표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어엿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안쓰러운..

놀자, 책이랑 2022.07.04

새벽에 홀로 깨어 / 최치원

'새벽에 홀로 깨어'를 한 밤중에 홀로 읽었다. 단촐한 시문선집이다. 최치원은 신라 시대 사람으로 12살에 당나라로 유학가서 6년만에 반공과(그곳의 과거 혹은 고시) 에 합격하고, 일찌기 문명을 떨쳤다. 신라로 돌아와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좌절하고 은거, 사망 년도를 모른다. 어느 시대나 개혁파는 외롭다. 그러나 그들의 피땀으로 사회는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유 불 선을 통달한 올곧은 지성인은 이른바 기득권 세력이 받아주질 않는다. 그 벽은 어느 시대나 높다. 어린 유학생 시간의 심경이 오롯이 담겨 있는 시문이 처연하다. 문집은 '신라의 위대한 고승'들을 소개와 '참 이상한 이야기'는 설화같다. 명문장가로 알려지게 한 '토황소격문' 은 고변의 종사관로서 지은 글이다. 공문서에 가까운 글을 4년 동안 만 ..

놀자, 책이랑 2022.06.26

나 홀로 간다 / 정승윤

왠지 푸른 배경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단단한 표지는 오래 소장하라는 권고인가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여린 속살을 보호하기 위한 투구같다. 저 홀로 서 있는 나무들, 숲을 이루었으나 여전히 저 홀로 쓸쓸하다. 표지가 전하는 깊은 가을 숲의 스산함에 빠져 단숨에 읽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만난 정승윤 선생님은 단아했다. 언듯 비치는 유머에 멋쩍은 웃음을 짓던 시간을 소환한다. 작가의 쓸쓸함과 슬픔이 달큰하게 읽히는 것 뭔가. 이미 세속 잣대를 벗은 관조와 내공의 결과인듯, 반갑다. 작가의 말 ... 나의 슬픔의 글들은 단지 자기 연민이라든가 자기 위로의 글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당신도 역시 실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슬픔은 당신의 슬픔을 반영한다. 나는 결국 공감을 ..

놀자, 책이랑 2022.06.25

붉은산 검은피 / 오봉옥

33년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 시집은 오봉옥 시인의 아픈 손가락이다. 이 시집으로 인해 여러 명이 감옥에 가고, 시인도 수감생활을 했다. 판매 금지된 시집을 새로 출간했으니, 시인도 독자도 감격이다. 이데올로기로 내몰았지만 우리말이 살아 꿈틀댄다. 피로 물든 역사의 뒤안길을 아득한 마음으로 따라 간다. 들어보소, 녹두벌 새 울음 좀 들어보소 1 어버지여 아버지여 당신께서 맨지게에 나무 석 짐 휘엉청 지고 지게 목발 끌며 소를 몰고 끈덕끈덕 돌아오실 때에 머얼리선 바알간 석양이 당신의 이랴이랴 소리에 궁둥이를 슬쩍슬쩍 틀었지요 그때면 싸립에 섰던 아이가 아버지 하며 쪼르르 달려와선 소고삐를 얼른 잡았고요 음매! 음메에! (하략) (12쪽) 사평아재, 싸게 와서 이야그 한 자락 펼쳐보소 1 석이는 사평아제..

놀자, 책이랑 2022.06.21

자궁아, 미안해 / 이영희

등단 17년 차 이영희 작가의 첫 수필집이다. 묵은지처럼 깊은 맛이 있다. 오래 전 이지의 『분서』 원문으로 필사했다는 말을 듣고 예사롭지 않았다. 오랜 시간 다졌지만 가뿐하게 정리했다. 솔직 발랄도 하다. 이영희씨에 대한 기억은 유쾌, 통쾌한 유머가 압권이다. 표지그림도 직접 그렸다. 화려한 모습 이면의 수줍은 내면이 얼비친다. 겸손이 지나쳐 자주 숨는다. 이제 다 아팠으니, 앞으로는 훨훨 날개 펼치길 바란다. 박수보낸다. 책을 펴내며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이 남긴 유명한 말,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 그녀는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을 향해 예리하며 절박한 목소리를 내고 싶기에 저만큼의 단단한 각오를 다졌을 것이..

놀자, 책이랑 2022.06.09

그늘이 그늘의 손을 잡고 / 노혜숙 포토에세이

반듯하고 성실한 인상, 몇 번 만난 노혜숙 작가의 느낌이다. 포토에세이는 일단 사물을 대하는 남다른 시선과 감각이 필요할 듯하다. 정물화, 풍경화 같은 사진은 서정을 바탕으로 하고, 비구상으로 다가오는 사진은 상상력을 이끈다. 꾸준히, 치밀하게 잘 쓰는 작가의 내공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풍경과 나란히 놓인 짧은 글에 긴 숨이 따라온다. 찬찬히 음미하며 '쓸모없음의 쓸모'에 '스미'며 오래 '뒤척'일 것 같다. '그늘이 그늘의 손을 잡'을 때까지. 프롤로그 처처가 안갯속이었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것임을 늦게야 알았다. 안갯속 헤치고 여기까지 왔다. 많은 궤적들이 그늘에 닿아 있다. 그 언저리에서 볕을 품고 싶었던 안간힘, 그 편린들을 사진과 짧은 글로 엮는다. 변변찮은 다짐들이 많을 것이다. 그대로 나다..

놀자, 책이랑 2022.06.05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 위화

『허삼관 매혈기』 가 떠오르는 소설가 위화의 산문집이다. 2016년에 쓴 이 책은 여전히 현장성이 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거대한 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 더우기 오늘, 영화 을 보고 맘이 착잡하다. 오는 길에 지방선거 서전투표를 했다. 요즘 분위기를 생각하니 무거운 마음이 더 깊어진다. * 10년 전 『인생』을 발표했을 때, 몇몇 친구들이 놀렸다. 그들의 예상과 달라서였다. 그들이 보기에 아방가르드 작가가, 갑자기 전통적 의미의 소설을 쓴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그들에게 한마디로 답했다. "하나의 유파만을 위해 창작을 하는 작가는 하나도 없어. " (60쪽) * 상상의 함의란 무엇인가? 여러 해 전, 나는 잡지 에 수필을 쓰면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피상적으로 언급했는..

놀자, 책이랑 2022.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