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600

아버지의 유산 / 필립 로스

미국의 명망 있는 모든 상을 휩쓴 작가, 필립 로스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기록한 글이다. 작가로서는 성공했으나 이혼하고 자녀도 없는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다. 뇌에 큰 종앙이 있고, 오른쪽 눈 시력이 거의 없고, 안면신경마비상태다. 그럼에도 정신은 누구보다 맑고 명석하기까지 하다. 총을 들고 유대인 노인을 노려 강도짓을 하는 흑인 소년에게 한 행동이며, 의사에게 자기 병에 질문하는 것이며, 똥을 싸고 한 행동이며... 오래 남을 장면이 많다. *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네 단어, 그전에는 평생 아버지에게 해본 적이 없는 네 단어를 내뱉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스웨터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세요." 그것은, 그 네 단어는 먹혔다. 나는 쉰다섯이고, 아버지는 여든..

놀자, 책이랑 2022.02.23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71년생 김지수가 88세 이어령 선생님을 매주 화요일 찾아가서 나눈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이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다. 더불어 고백건대 내가 인터뷰어로서 꿀 수 있었던 가장 달콤한 꿈이었다.' PS. 선생님은 은유가 가득한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라셨지만,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푼다. (감사하게도 그가 맹렬하게 죽음을 말할수록 죽음이 그를 비껴간다고 나는 느꼈다.) ' 2005년, 현대수필 특강에 초대해서 가까이서 본 일이 떠오른다. 그 반듯한 용모와 카랑카랑한 음성이 선하다.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우리 엄마 말도 떠오르고. 선생님은 암에 걸렸는데 전이된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있다. 암, cancer는 라틴 말..

놀자, 책이랑 2022.02.19

가르칠 수있는 용기 / 파커 J. 파머

'교사들의 교사'로 존경받는 파커 J. 파머다. 가르침에 대한 통찰과 다양한 실험으로 가르치는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 메시지를 전한다. 파머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4쪽에 이르는 이 책에 보내는 각계의 찬사로 시작한다. '아내 샤론과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맥스 J. 파머 (1912~ 1994)에게 이 책을 바친다.' 오래 전에 그의 다른 책에서 아내 샤론 파머는 그의 모든 글에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명료한가? 아름다운가?"하는 잣대를 적용했던 게 떠오른다. 그 사이 샤론 파머가 하늘나라로 거처를 바꿨다. 이렇듯 샤론이 없는 파커도 잘 살아내고 있구나... 생각하니 좀 쓸쓸하긴 하다. * 가르치는 자아의 내면 풍경의 지도를 잘 작성하려면, 지성, 감성, 영성의 3대 노선을 취해야 하며 그 중 어느 하..

놀자, 책이랑 2022.02.15

사계 / 서강홍

서강홍 선생님은 2000년 등단으로 한때 활발히 활동하셨다. 첫 책 출판기념회에 윤교수님 모시고 편집위원들이 포항까지 갔던 생각이 난다. 낭낭한 목소리로 가곡을 잘 부르셨고, 퇴직 후에는 포항색소폰오케스트라의 회장을 하셨다. 가끔 공무로 전화를 하면 "저를 우예 아십니껴~ " 하시던 음성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빈다. * 한때 동양화로 불리었던 우리의 전통 회화를 아직도 국화가 아닌 한국화로 지칭하고 있다. 한국화를 국화로 명명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 엄연히 국사였던 우리 역사를 난데없이 한국사라 칭하고 있다. 애달픈 일이다. 부끄러운 오류를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주인공임을 확인하고 자랑스러운 역사와 ..

놀자, 책이랑 2022.02.09

일본산고 / 박경리

일본이 조선인 강제 노역 동원으로 이뤄진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 책을 읽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산 증인인 박경리 선생의 생각은 어땠을까. 읽은 후, 경험하지 않았어도 이심전심을 느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답답한 건 어쩔수 없는 감정이다. * 통곡이 없는 민족, 울지 않는 민족, 왜 울지 않을까? 슬픔도 마치 실루엣같이 소리가 없다. 너무나 정적이다. 본시부터 그러했을까? 그들이라고 울지 않을리 없다. 그렇치는 않았을 것이다. 칼로 상징되는 그들의 역사 탓일 것이다. 사실 일본이 이웃에 끼친 피해의 규모가 크고 참혹함도 자심한 것이었지만 그들 스스로, 동족들 목줄기에 들이댄 칼의 세월이 훨씬 길다. 그리고 그 참혹함도 타민족에 대한 것에 못지않았다. 예를 하..

놀자, 책이랑 2022.02.06

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한나 아렌트는 독일 태생의 유대계 미국 정치이론가다. 철학이 단독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한다는 점 때문에 철학자로 불리길 거부하고 세계 안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인류를 주목해 정치이론가를 자처했다. * 누군가 진정한 나치로 변해 그에 관한 글을 썼을 때, 그 사람이 나한테 개인적으로 충실할 필요는 없었어요. 나는 어쨌건 그 사람과는 다시는 말을 섞지 않았어요. 그는 더 이상 나를 접촉해야 할 까닭이 없었고요. 내 생각에 그는 이미 존재하기를 멈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건 상당히 명확한 일이었어요.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같이 살인자는 아니었어요. 내가 요즘 애기하고는 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었죠. (52쪽) *에 관한 질문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아주 흔하다고 생각해..

놀자, 책이랑 2022.02.02

아롬다온 개조심 / 류창희

부산의 류창희 선생의 맹렬한 삶을 또 바라본다. 여리여리한 몸의 연유부터 열심으로 내딛는 마음까지 훤히 읽힌다. 형식을 벗고 자유롭지만 바닥에는 공자님 말씀이 깔려있다. 선생이 진행하는 '논어강의실' 풍경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벗음으로 스스로 치유되는 수필에 정점을 찍고, 바뀐 세속의 풍경과 속내를 보여준다. 글 너머의 의미를 생각하며 슬쩍 웃음이 지어지기도 하고 맘이 쓰리기도 하다. 동시대 동지역을 살아 낸 이야기에서는 곳곳의 추억에 함께 젖었다. 여행지도 같은 경로가 많은데, 그야말로 차별화되어 새롭게 읽었다. 부산문화재단에서 기금을 받아 만든 책이라니 더욱 반갑다. 부산 여행을 갔는데, 그곳 게스트하우스 잠자리에 누워 류 선생이 밤새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준 듯 하다. 요즘 내가 하는 설 인사..

놀자, 책이랑 2022.01.29

인도방랑 / 후지와라 신야

1944년 일본 후쿠오카 산産 후지와라 신야가 25세에 인도에서 3년간 머문 기록이다. 내가 처음 인도에 간 게 2006년이니까 한참의 시차가 있다. 그럼에도 사진으로 만난 그곳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이 책을 읽으니 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다녀왔지만 '관광'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두 번째, 2013년 인문학기행으로 간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속살이란 것이 본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가까이서 바라본 풍경이 아득하면서도 찌릿하다. * 인도에 오래 있다 보면 점점 벌레처럼 되어갑니다. 인력이 강한 땅 같아요. 인력은 지구 위 어디나 똑같겠지만 땅이 끌어당기는 힘 같은 게 있어요. 땅의 힘 때문에 기진맥진해가는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티베트에 가면 하늘이 확 잡아당긴달지, 문득 ..

놀자, 책이랑 2022.01.26

주관적 산문 쓰기 / 석현수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 수필을 쓰면서 치열하게 탐구한 기록이다. 많고 많은 수필이론에 대한 의구심과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흥미로운 수필 이론을 알려준다. 언제 읽어도 절창인 윤오영의 수필로 쓴 수필이론 - '양잠설'과 '곶감과 수필'도 있다. 거의 외우다시피한 운정의 수필론도 반갑다. 에세이와 수필의 원류를 찾아 소개한다. 몽테뉴의 에세이와 베이컨의 에세이를 주제별로 비교 분석뿐아니라 원문도 소개한다. 몽테뉴 이전의 플라톤, 키케로, 세네카, 플로타르코스를 에세이의 선구자로 보고 몽테뉴 이후는 찰스 램, 버트란트 러셀, 그들의 글도 소개한다. 에세이와 수필 사이의 고민도 상당하다. 한국수필의 전성시대를 풍미한 김진섭, 이양하, 안병욱의 글도 소개한다. 10년 동안 쓴, 시집, 번역서, 수필집에 이번..

놀자, 책이랑 2022.01.22

글쓰기 인문학 10강 / 양선규

페북에서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자가 작가다"라는 소신이라며 매일 긴 글을 올리는 양선규 님의 책이다. 매일 쓴 페북 글을 모은 책 6권과 수많은 저서가 있다. 재독, 삼독을 해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다는 말에 걸렸다. 그래서 최대한 천천히 읽었다. 읽다보니 반복, 강조하는 부분이 많아 재독의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어쨌거나 나처럼 청탁이 아니면 안쓰는, 최소한을 쓰는 사람에게 경종이다. 댕~~ *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적어도 이 책 안에서는 그렇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아는 것만큼 쓴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는 것'은 인식의 영역이다. 그러나 글을 쓰다 보면 항상 무의식의 요구(강요)에 직면한다. 다른 말로, "글이 글을 부른다"라는 것을 실감한다...

놀자, 책이랑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