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599

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 / 홍혜랑

이다. 페북에서 소식듣고 바로 주문했다. 홍혜랑 선생님은 선정위원을 함께 하며 가까이 보게 되었는데,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얼마 전 사부님을 먼저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하고 아이 돌무렵부터 부부가 독일로 유학을 가서 6년간 공부를 하고 왔다. 아이는 조부모와 자라고 초등 1학년이 되면서 부모와 생활했다고 한다. '고국에 떼어놓고 온 어린 것들을 빈 복낭에 담은 채, 척박한 사막을 누비는 캥거루의 생존을 닮아 있었다.' 선생의 이 시절 소회가 저릿하다. 대학시절 학생기자로 전혜린을 만난 이야기가 「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이다. 그가 떠난 후에 남은 이들이 엮은 수필집을 보며 열광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시간 저 편, 쉬이 닿은 수 없는 것에 대한 매혹이었다...

놀자, 책이랑 2022.09.06

하얼빈 / 김 훈

장편소설 은 안중근에 대한 김훈의 기록이다. 작가는 를 제목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안중근의 가족과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이 하얼빈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풍경에 방점을 찍으려했던 것이다. 출판사에서 정한 '하얼빈'은 불친절하지만 열린 제목이다. 새로운 점은 인간 안중근과 이토의 공통점이 있다는 거다. 동양평화론에 대한 생각과 인간에 대한 예의? 이런게 이토 히로부미에게도 있었다는 거다. 천주교 신자로서의 안중근과 당시 프랑스 신부의 처신이 세세하다. 거사 후 우리 조정에서의 대처도 참으로 한심하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낙후된 게 정치다. 대하소설이 되어야 할 소재를 짧게 뭉치려니 아쉬움이 크다. 이 책에서도 김훈은 소설이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에 적어두었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추모 미사를..

놀자, 책이랑 2022.08.31

눈물 한 방울 / 이어령

이 마지막인줄 알았는데, 이어령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원고를 묶었다. '낙서'라고 하셨지만 낙서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탐구심 많은 석학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읽는 이에게 눈물 한 방울을 기어이 쏟게 만든다. 죽음만큼 엄정한 건 없다. ​ 컴퓨터 7대를 두고 글을 쓰던 이어령 선생님은 더 이상 더블클릭을 할 수 없어 펜으로 글을 썼다. 읽고 쓰는 일만이 존재 확인의 시간인 것이다. ​ ​ ​ * 꿈은 꾸다에서 나온 말 ​ 꿈은 미래에 대한 빚이다.돈도 꾼다고 하기 때문이다. 꿈을 많이 꿀수록 그에 대한 부채도 늘어난다. 죽을 때까지 갚을 수 없는 빚, 꿈은 죽은 뒤에도 남는다. 유언이 그렇지 않은가? 뒤에 오는 사람들이 꿈을 상속한다. 우리는 태어나던 때부터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이다. ​..

놀자, 책이랑 2022.08.25

5초의 법칙 / 멜 로빈스

심리학으로 전하는 자기개발서다. 변화를 선택하는 힘을 부추긴다. 마음에 동요가 일면 바로 ' 5- 4- 3- 2- 1' 카운트를 하며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많은 경험과 실예를 소개한다. 내 시간은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갔지만.... TED 에 대해 알아보기로 맘 먹었다. 사실 나는 거꾸로 5를 셀 것도 없이 즉시 시행하고 살지 않았는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 내가 오랜 시간을 두고 배운 것은 두 가지다. 마음을 먹었을 때 두려움은 줄어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 두려움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 로자 파크스 사소하지만 중요한 점이다. 로자 파크스는 주저하거나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잖아'라고 말하는 본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

놀자, 책이랑 2022.08.21

에콰도르 미완성 교향곡 / 박계화

박계화 선생님은 오래 전 산귀래문학상 행사장에서 기타치며 노래부르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난 멀리서... 박수만 쳤다. 지금까지 가까이서 뵌 적은 없다. 최근 페북에서 활동을 보며 감탄, 감탄하고 있었다. 41년 6개월 교직생활을 마치고, 코이카 봉사단으로 간 에콰도르에서 음악교사를 하며 겪은 이야기다. 후반기 인생의 기록이 곁에서 이야기 듣는 듯 자분자분 소상히 펼쳐있다. 지극하고 열렬한 마음은 어디서도 통하지만 애타는 순간도 많이 겪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중단되었지만, 그간의 이야기로 공무원연금 수필문학상을 타며, 또 봉사가 이어지고 있다. 흉내내기도 어려운 여정에 경의를 보낸다. 박계화 선생님은 언제까지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야말로 삶 자체가 명품이다. ​ ​ ​ '나를 필요로 한다...

놀자, 책이랑 2022.08.10

손의 온도는 / 유혜자

유혜자 선생님이 최근 2년 반 동안 쓴 작품을 묶었다. 현대수필 행사때마다 뵈었는데... 작품으로 만나는 선생님이 여전하셔서 다행이다. 선생님 등단 50년의 큰 의미도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다. 내가 아는 분과 책을 많이 만난 것도 또 반갑다. ​ 처음과 같이 이제껏 열심히 발표하시는 모습에 처음과 같이 성찰하며 겸손한 자세에 박수보내며, 깊이 고개 숙인다. ​ ​ ​ 걸어도 뛰어도 걷고 뛰어도 아직도 날개가 돋지 않아 나비가 못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비가 된 애벌레가 꽃들에게 희망을 주듯이, 문학의 힘은 사막 속에서나 땅속에서 700년이나 지내며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작품은 읽는 이들에게도 생명이 영원히 이어지리라. - 책머리말 중에서 ​ ​ * 나도 어..

놀자, 책이랑 2022.08.08

고종석의 문장 1 / 고종석

수필 강의 새 교재를 찾느라고 뒤적였다. 곁에서 말하듯이 조근조근 경어체로 알려준다. 다 아는 이야기라도 이렇게 살갑게 이르면 마냥 끄덕일 것 같다. 더우기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다'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가. 인상적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방점을 찍고 궁리를 시작하란다. 글쓰기 강의 녹취를 편집해서 만든 책이다. ​ ​ *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숭실대학교 진리관에서 한 글쓰기 강연을 활자로 풀어내놓는다. 얄궂게도, 나는 그 글쓰기 강연을 통해서 내가 글쓰기보다 말하기를 더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책 앞에 ​ *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모모는..." 처음 들어보시나요? 소설의 대사와 지문을 가사로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 정말..

놀자, 책이랑 2022.08.01

고종석의 문장 2 / 고종석

​ ​ * 양주동: 독보적 문체를 통한 구별짓기 호가 무애인 양주동 선생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국문학자로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신라향가와 고려가요 연구로 유명한 분입니다. 이런 옛 노래들을 연구해서 낸 학술저서가 딱 두 권이에요. 랑 . 앞엣것이 향가에 대한 연구서이고, 뒤엣것이 고려가요에 대한 연구서입니다. 둘 다 매우 두꺼운 책입니다. 이분은 이 책 두 권만 쓰시고 학술 연구는 그냥 내려놓다시피 했습니다. '난 공부할 건 다했다. 이제 술이나 마시고 살아야지. 술이나 마시며 잡문이나 쓰면서 살아야지', 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이런 수필집을 내셨습니다. 일제 때는 시도 쓰셔서 이란 시집도 내셨는데, 제가 외람되게 평가하자면 시인으로서는 뛰어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산문이 아주 독특합니다. 그 누구..

놀자, 책이랑 2022.08.01

작별하지 않는다 / 한 강

제주 4.3에 대해 쓰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읽는 것도 힘들었다. 책을 주로 밤에 주루룩 읽는데... 도무지 밤에 읽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마음까지 들면서. 토욜 반포에 결혼식을 잠깐 다녀오고 내내 읽었다. 짬짬이 긴 쉼을 가지며. 오래 전, 제주에서 빈첸시오 활동하면서 만난 4.3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도 쉬쉬하던 이야기였다. 꿈으로 시작해서 현실과 꿈이 오가는 느낌,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 찐득하게 따라붙는다. 책과 놀지 못한, 불편한 독서였다. 이렇게 시작한다. *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

놀자, 책이랑 2022.07.17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 이윤학 산문집

이윤학 시인은 오래 전 로 만났다. 페북에서 신간 소개를 보고 주문했다. 천생 시인인 그의 시 밖의 삶에 맘이 착 가라앉는다. 왜 이리 짠한가. - 작가의 말 한 사내가 떠난 외동 빌라의 끝 층 픽스창, 무수한 내륙등대 불빛이 모여 있었다 지붕 밑 외벽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둥지 밑 폐 전화선에 앉아 서로 거리를 벌리다 좁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기를 반복한 끝에 날이 새고 있었다 오늘은 은둔형 외통이 사내가 떠난 빈집에 들어가 십 년을 살고 나왔다 책 한 권 들고 어둑해진 골목길 어깨 높이 화단 턱에 걸터앉았다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곁에 앉아 언제가 불쑥 부르고픈 노래가 있었다 * 나는 지금껏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샘물은 차오르면서 불순물을 걸..

놀자, 책이랑 2022.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