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눈물 한 방울 / 이어령

칠부능선 2022. 8. 25. 23:36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마지막인줄 알았는데,

이어령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원고를 묶었다. '낙서'라고 하셨지만 낙서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탐구심 많은 석학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읽는 이에게 눈물 한 방울을 기어이 쏟게 만든다.

죽음만큼 엄정한 건 없다.

컴퓨터 7대를 두고 글을 쓰던 이어령 선생님은 더 이상 더블클릭을 할 수 없어 펜으로 글을 썼다.

읽고 쓰는 일만이 존재 확인의 시간인 것이다.

* 꿈은 꾸다에서 나온 말

꿈은 미래에 대한 빚이다.돈도 꾼다고 하기 때문이다.

꿈을 많이 꿀수록 그에 대한 부채도 늘어난다.

죽을 때까지 갚을 수 없는 빚, 꿈은 죽은 뒤에도 남는다.

유언이 그렇지 않은가?

뒤에 오는 사람들이 꿈을 상속한다.

우리는 태어나던 때부터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이다.

달나라로 가는 꿈 때문에 인류는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NASA는 그 꿈 (그 안에는 H. G 웰스 같은 작가도 있다)을,

빚을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이다.

많은 사람들 (과학자들만이 아니라)이 빚잔치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이 땅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도.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달라라에

가기 위해서 이 땅에 더 큰 사막을 만들어야 했다. (34쪽)

​*  주목注目이란 말은 알아도 유목遊目이란 말은 잘 모른다. 

주목은 한 곳만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이고 유목은 일정한 초점 없이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시선이다. 

윤선도는 강촌 온갖 꽃이 먼 빛에 더욱 좋다고 말한다.

주목은 대상에 밀착하려고 다가선다. 유목은 대상에서 멀어지면서 떨어진다. 

노자를 만난 공자가 그를 용이라고 칭하면서, 노자가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후세 사람들이 모두 꾸며댄 이야기일 것이다). 

노자의 시선이 바로 유목이었던 게다. 공자는 세상만사에 주목을 하고 (주자학에 이르면 더욱더 심해진다) 

노자는 자연의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금붕어 (어항 속)를 보여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재현하도록 하면 한국(아시아) 학생은 금붕어만이 아니라

어항 속에 들어 있는 수초나 돌과 같은 것도 그린다. 

그러나 서양 학생들은 금붕어만을 그것도 자신이 관심을 둔 금붕어만 집중적으로 그린다고 한다. 

주목과 유목, 그 두 시선의 차이에서 동서 문명이 갈라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45쪽)

 

 

 

* 암 선고를 받고 난 뒤로 어젯밤에 처음,

어머니 영정 앞에서 울었다. 통곡을 했다.

80년 전 어머니 앞에서 울던 그 울음소리다.

울면 꿑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아야

암세포들이, 죽음의 입자들이 날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차돌이 되어야지. 불안, 공포 그리고 비애 앞에서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는 차돌이 되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그런데 울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해.'

울고 또 울었다. 엉엉 울었다.

2021. 7. 30 금요일

- 어릴 적에 아이들 간에 규칙이 있었다. 싸움을 하다가 먼저 우는 사람이 패자가 된다는 것.

2022년 2월 26일 별세했다. 마지막 육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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