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일본산고 / 박경리

칠부능선 2022. 2. 6. 19:33

  일본이 조선인 강제 노역 동원으로 이뤄진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 책을 읽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산 증인인 박경리 선생의 생각은 어땠을까.

  읽은 후, 경험하지 않았어도 이심전심을 느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답답한 건 어쩔수 없는 감정이다. 

 


* 통곡이 없는 민족, 울지 않는 민족, 왜 울지 않을까? 슬픔도 마치 실루엣같이 소리가 없다. 너무나 정적이다. 본시부터 그러했을까? 그들이라고 울지 않을리 없다. 그렇치는 않았을 것이다. 칼로 상징되는 그들의 역사 탓일 것이다. 사실 일본이 이웃에 끼친 피해의 규모가 크고 참혹함도 자심한 것이었지만 그들 스스로, 동족들 목줄기에 들이댄 칼의 세월이 훨씬 길다. 그리고 그 참혹함도 타민족에 대한 것에 못지않았다. 예를 하나 들자면 일본 정신을 의식화한 것 중에 하라키리切腹라는 게 있다. 나는 그것을 몬도카네로 표현한 적이 있지만 일종의 새디즘과 마조히즘의 복합으로 보아도 과히 틀리지 않으리라. (50쪽)

 

* 나는 1926년 일제시대에 태어났고 1946년 20세 때 일본은 이 땅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일본어 일본 문학에 길들여진 나는 그 후에도 꽤 긴 세월 지식을 일본서적에서 얻은 것은 사실이다. 왜 이런 말이 필요한가 하면 오늘날 일본인들 60대가 가지는 기본적인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다는 얘기며 내 자신이 공평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 때문에 내 스스로 나를 점검해 본 것이다. 오히려 내 시각과 판단과 기준에 정직할 수 없는 흔들림조차 있다. 

 민족적 감정 때문에 사시斜視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염려때문이다. (61쪽)

 

* 옛적의 반일과 지금의 반일은 기본적인 성격에 있어서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를 거부하는 반일이라고 하면 후자는 끌어들이는 반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자의 반일은 일본의 사람도 물자도 이 땅으로부터 물러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반일의 중심목표는 독립의 쟁취였으므로 반일은 즉 배일로, 여기에는 아무런 의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반일은 "우리들의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일본이 동조하지 않는 것은 괘씸하다"라는 투의 반일입니다. 다시말하면 '한국이 요구하는 선에 일본은 가까이 오라'는 것이어서 거기에는 '너하고 인연을 끊는다'라는 거부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169쪽)

 

* 나는 그 무렵 "사죄 따위의 말은 필요 없다. 우리 민족이 흘린 피 값, 내 나라에서 약탈해 간 귀중한 것들을 내놔라 해야 해" 하고 말한 적이 있다. 사죄의 문구 때문에 소설가까지 동원하며 법석을 피우는 일본을 한국 땅에 앉아서 바라본 나는 일종의 연민을 느꼈다. 참으로 가난한 나라로구나. 잘못을 사과할 용기조차 없는 그들,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

(187쪽)

 

* 나는 일본의 양심에 기대한다. 전쟁의 책임이 천황에게 있다 하여 테러를 당한 시장이라든가 왜곡된 자기 저술을 바로잡기 위해 재판을 건 학자라든가 다나카 씨와 함께 <신동아>에 글을 쓴 다카사키 소지 같은 분, 그 밖에도 진실을 말하는 여러 분이 계신 줄 안다. 옛날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만 그런 양심이 많아져야 진정한 평화를 일본은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끝으로 "나앉은 거지가 도신세 (우두머리의 처지) 걱정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이 얘기는 일본의 경우일 수도, 우리의 경우일 수도 있다. (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