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가르칠 수있는 용기 / 파커 J. 파머

칠부능선 2022. 2. 15. 19:10

'교사들의 교사'로 존경받는 파커 J. 파머다. 

가르침에 대한 통찰과 다양한 실험으로 가르치는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 메시지를 전한다. 

파머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4쪽에 이르는 이 책에 보내는 각계의 찬사로 시작한다.  

 

'아내 샤론과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맥스 J. 파머 (1912~ 1994)에게 

이 책을 바친다.'

 

오래 전에 그의 다른 책에서 아내 샤론 파머는 그의 모든 글에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명료한가? 아름다운가?"하는 잣대를 적용했던 게 떠오른다. 그 사이 샤론 파머가 하늘나라로 거처를 바꿨다. 이렇듯 샤론이 없는 파커도 잘 살아내고 있구나...  생각하니 좀 쓸쓸하긴 하다. 

 

 

* 가르치는 자아의 내면 풍경의 지도를 잘 작성하려면, 지성, 감성, 영성의 3대 노선을 취해야 하며 그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지성으로 축소해버리면, 그것은 차가운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버리고만다. 반면 감성으로만 다룬다면 나르시스적인 감상주의가 되어버린다. 영성으로만 접근한다면 이 세상과의 연결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지성, 감성, 영성이 혼연일체가 되어야만 바람직한 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의 자아와 교육에서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39쪽)

 

*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모든 실제적인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했다. 정말로 가르침은 끝없는 만남인 것이다. 새로운 만남을 계속해서 받아들이고, 성실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피곤하면서도 겁나는 일이다.  (58쪽)

 

* "옥수수 열매와의 관계에서 매클린톡은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을 성취했다. 그 사랑은 친밀하지만 서로간의 차이를 절멸시키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이 놀라운 말은 바라라 메클린톡 과학의 핵심을 찔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진정한 관계 - 인간과 역사, 인간과 자연, 인간과 다른 인간, 인간과 사물 -의 핵심을 찌른 것이기도 하다.  (120쪽)

 

* 공간은 침묵과 언어를 동시에 환영해야 한다.

가르침과 배움에서 말이 유일한 매개는 아니다. 우리는 침묵만으로도 가르칠 수 있다. 침묵은 우리에게 우리가 말한 것과 들은 것을 반성할 기회를 준다. 침묵 그 자체는 세계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오는 일종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평균적인 집단의 침묵을 견딜 수 있는 한도가 15초라고 한다.  (156쪽) 

 

* 교사로서의 재능은 결국 학생들과 함께 춤출 수 있는 능력, 학생과 교사가 동시에 가르치고 배우는 상황을 공동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학생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들을 믿어주고 또 그들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한, 나의 수업 방식은 통할 것이라고 본다. (172쪽)

 

* 나는 인식하기와 신성한 것의 결합이 늘 바람직한 결과만을 낳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의 역사를 검토해 보면, 영성靈性도 속성俗性 못지않게 나쁜 씨앗을 뿌리는 경향이 있다. 공포, 완고, 엄격한 정통성 주장 등 종교계의 병리가 세속적인 형태에서도 그대로 발견되는데, 특히 학원에서 그런 사례가 많다. 우리가 성과 속을 한데 엮어 서로 보완할 때 교육의 건강성은 회복될 것이다. (207쪽) 

 

 

*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위대한 운동들을 생각해 보라. 미국에서의 노예해방 운동,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남아프리카의 인종 차별 폐지 운동,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진행 중인 여성운동, 이 모든 운동들은 모든 외부적인 권력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다. (348쪽)

 

*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은 깊다. 하지만 교육자라는 우리의 위대한 소명과 직분, 그리고 힘은 어두운 곳에서 빛을 비추려 하고 있다. 새로운 전문인, 진정한 전문가가 필요한 세상에 대고 두려움이 가득한 '아니다 no'나 회피적인 '어쩌면 그럴지도 maybe'로 대답하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우리의 삶이 진심으로 분명하게 "맞다 yes"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자.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