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아버지의 유산 / 필립 로스

칠부능선 2022. 2. 23. 21:21

  미국의 명망 있는 모든 상을 휩쓴 작가, 필립 로스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기록한 글이다. 작가로서는 성공했으나 이혼하고 자녀도 없는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다. 뇌에 큰 종앙이 있고, 오른쪽 눈 시력이 거의 없고, 안면신경마비상태다. 그럼에도 정신은 누구보다 맑고 명석하기까지 하다.

  총을 들고 유대인 노인을 노려 강도짓을 하는 흑인 소년에게 한 행동이며, 의사에게 자기 병에 질문하는 것이며, 똥을 싸고 한 행동이며... 오래 남을 장면이 많다. 

 

 

*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네 단어, 그전에는 평생 아버지에게 해본 적이 없는 네 단어를 내뱉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스웨터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세요." 

 그것은, 그 네 단어는 먹혔다. 나는 쉰다섯이고, 아버지는 여든일곱이 다 되었고, 때는 1988년이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 아버지는 그렇게 한다. 한 시대의 끝이고 다른 시대의 새벽이다. (94쪽)

 

*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에 관해서도 전해줄 만한 좋은 소식은 별로 없었다. "루이 체슬러는 입원해 있는데, 피오줌을 싼다는구나. 이이다 싱어는 거의 장님이래. 밀턴 싱어는 걷지를 못해. 휠체어 신세야.  ... 빌은 지금 프랭키하고 살고 있지만, 프랭키 말로는 곧 양로원에 넣어야 할거래." 

 이렇게 아버지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과 죽어가고 있는 사람과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친구들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종양만 생각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었다. (128쪽)

 

*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이민자 거리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오. 나는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고,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한 번도 용기를 잃거나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소. 나는 충실한 남편, 충성스러운 미국인, 당당한 유대인이었고, 두 훌륭한 아들에게 나는 가져본 적이 없는 모든 기회를 주었소. 그런 내가 요구하고 있는 건 정말 내가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는거요. - 팔십육 년을 한번 더! 왜," 아버지는 그렇게 물을 것이다. 

" 인간은 도대체 죽어야 하는 거요?" 물론 아버지는 그렇게 물어 마땅할 것이다. 그것은 좋은 질문이었다. (159쪽)

 

* 그것이 나의 유산이었다. 돈이 아니라, 성구함이 아니라, 면도용 컵이 아니라. 똥이. (209쪽)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의 들것을 따라 병실로 가, 그들이 아버지를 내려놓은 병상 옆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죽은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꾼이었다. 죽는 것은 무시무시했고 아버지는 죽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고, 그래도 그것은 아직 아버지 손의 촉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이마를 쓰다듬었고, 그래도 그것은 아직 아버지의 이마처럼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이제 귀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다. 다행히도 그날 아침 내가 아버지한테 한 말 가운데 아버지가 이미 알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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