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사실들 / 필립 로스

칠부능선 2022. 3. 1. 18:58

부제 <한 소설가의 자서전> 

필립 로스의 이 자서전은 바로 전에 읽은 <아버지의 유산> 이전 작품이다. 

작가의 일상은 소설의 모티브가 된다. 인생 편력이 곧 여성 편력이기도 하다. 그 특별한 인간관계에서 얻은 경험이 소설에 어떻게 펼쳐졌을지 그의 소설이 궁금해진다. 

작가적 분신이기도 한 작품의 주인공 '주커먼'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하고 주커먼이 작가, 로스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친다. 

2018년 5월 22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85세)

 

 

*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건 허구적 자기 전설을 지어내느라 탈진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신경쇠약에 대한 자연스러운 치료적 반응인 것만도 아니며, 1981년에 일흔 일곱의 나이로 나에겐 여전히 불가해하게만 여겨지는 죽음을 맞이하신 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대한 일시적 처방이자, 삶의 종말이 면도할 때 보는 거울만큼 가까이 있다고 여기시는 여든 여섯 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네. (19쪽) 

 

* 기업의 차별보다 더 무시무시한 건 비유대인 세계의 최하층인 룸펜 아이들이 보인 적개심이었다. 어느 해 여름, 저지 쇼어의 다 쓰러져가는 작은 마을 넵툰에 사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브래드리비치로 이어진 판잣길에 달려오면서 "유대인놈들! 더러운 유대놈들!" 하고 외쳐대며 미처 숨지 못한 사람들을 때렸다. (39쪽)

 

* 아버지와 나는 이틀간 연극조의 호통과 신랄한 침묵으로 맞서다가 슬픔에 빠진 어머니를 생각해서 결국 아슬아슬한 휴전을 했지만, 나는 오이디푸스적 전쟁터에서 갓 탈출하여 휴식과 재활이 절신한 전쟁신경증 환자로 버크넬에 돌아가야 했다.  (73쪽)

 

* 의심할 바 없이 그녀는 나의 최악의 적이었으나, 아아, 가장 위대한 창작 선생, 극단적 소설의 미학에 잇어서의 탁월한 전문가이기도 했다.  독자들이여, 나는 그녀와 결혼했다. (164쪽)

 

* 내가 병으로 앓아누운 1967년 가을쯤엔 별거로 인한 최악의 시기가 끝나는 듯했다. 내가 조시를 떠난 지 5년이 되었고, 조시는 여전히 이혼을 거부하며 다음해에는 주당 125달러의 별거수당을 더 올리기 위해 두번째로 나를 법정에 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4쪽) 

 

* 1987년 봄에 간단한 수술로 끝날 줄 았았던 장기간 육체적 시련을 안겨주면서 우울증에 걸려 감정적, 정신적 붕괴의 벼랑 끝까지 가게 되었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물론 마음이 괴롭네. ... 나의 소멸에 맞서서 신중하게 엄선한 8천 단어로 철두철미한 주장을 펼치고 보니, 나 스스로 진짜 고통과의 새로운 싸움을 보장한 꼴이 된 듯하군! 하지만 대안이 뭔가?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