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용재총화 / 성현

칠부능선 2022. 3. 9. 13:44

 

  500년 저 너머 사람 성현(1439~1504)의 글이다. 

세종 연간에 태어나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세 임금을 차례로 모시며 높은 벼슬을 했다.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비평가, 탁원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용재총화』는 일곱 개의 장으로 먼저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람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역사책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의 일화 및 점잖고 근엄해 보이는 사대부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으며, 호기가 넘치는 영웅과 지사의 일화, 백성의 해학이 담긴 민담과 소화, 오싹하고도 가엾은 귀신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역사와 풍속 이야기를 담았다.'

  역자의 소개는 거창하나 그야말로 문학적 장치 없는 옛날이야기다. 

 

 <벌레가 담긴 편지> 같은 글을 어찌 해학이라고 하는지.

매생이 자반을 맛있게 먹었다는 친구 김간을 초대해 자기는 매생이 자반을 먹고, 친구는 물이끼 자반만 먹게해서 배탈이 나 며칠 앓게 하고, 정원의 나뭇잎에 푸른 벌레를 잡아 봉투에 넣어 귀한 음식이라고 여종을 시켜 김간에게 보낸다.

"귀한 음식을 자기가 먹지 않고 내게 주다니 정말 벗을 사랑하는 친구로구나" 이러며 봉투를 열자 벌레들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벌레가 닿았던 곳은 모두 부스럼이 나 난리를 치게 해 놓고 크게 웃었다니...

참 난감하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도 있고, 다 아는 이야기도 많다. 그 중 비평가로서의 글이다.

 

 

* 우리나라 문장가

 

  우리나라 문학은 최치원 때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한 뒤로 문장을 잘 짓는다는 명성을 크게 떨쳤다. 지금은 문묘에 배향되었다. 지금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비록 시구를 잘 짓긴 하지만 뜻이 정밀하지 않고, 비록 사륙문을 짓는 솜씨가 공교롭긴 하지만 어휘가 정돈되어 있지 않다. 

그 뒤로 김부식의 문장은 넉넉하지만 화려하지는 않고,

정지상의 글은 찬란하지만 굳건한 기운을 드날리지는 않는다.

이규보는 글을 전개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잘 수습하지는 않고,

이인로는 자구를 잘 단련하지만 글을 펼쳐 나가는 필력은 부족하다.

임춘은 치밀하지만 통창한 맛이 부족하고,

이곡은 직실하지만 의표를 찌르는 사고가 부족하며,

이제헌은 노련하고 건실하지만 수사가 부족하다.

이승인은 온건하나 유장한 맛이 부족하고,

정몽주는 순수하지만 요점을 갖추지 못했으며,

정도전은 부풀리는 데 능하지만 단속하지 않는다.

이색은 집대성하여 시와 산문에 모두 뛰어나다고 세상에서 일컬어진다.

그러나 고루하고 엉성한 면이 많아 원나라 사람의 시와 비교해도 미치지 못하는데, 당나라와 송나라의 경지에 비할 수 있겠는가?

권근과 변계량은 비록 대제학이 되었지만 이색에게 미칠 수 없으며, 그중 변계량이 수준이 더 낫다. (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