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에릭 와이너

칠부능선 2022. 3. 27. 19:06

에릭 와이너가 기차여행을 하면서 철학자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섭렵한다. 

'빌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드 보통의 통찰력'을 가진 매력적인 글솜씨라는 에릭 와이너, 그를 처음 만난 나는 시작보다 뒤로 갈수록 많은 포스트잇을 붙이게 되었다. 

 

 

*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을 사람들의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51쪽)

 

* 소로가 받은 혹독한 비난은 주로 위선에 관한 것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맡겼다. 그건 사실이다. 소로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월든에 고립되어 살지 않았다. 엄마의 요리를 먹으려고, 또한 우체국과 카페에 들르려고 종종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116쪽) 

 

* <논어>는 공부를 칭송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의 '공부'는 기계적 암기를 뜻하지 않는다. 심지어 배움 그 자체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공자에겐 더 깊은 뜻이 있다. 바로 도덕적 자기수양이다. 우리는 교육받은 내용을 배운다. 수양한 것은 흡수한다. 작은 친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민에서 나온 행동 하나하나는 곧 삼나무 씨앗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319쪽)

 

* 니체가 읽기 버거운 것은 소크라테스처럼 니체도 확고한 신념에 의문을 품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철학이 명백한 근거와 냉정한 논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그러한 믿음에 흠집을 냈다면, 니체는 그 믿음을 분쇄해버린다. 충동과 비이성을 조용하게 찬양하는 목소리가 책 속에 스며 있다. 

(376쪽)

 

* 보브아르는 노인이 "가난과 노쇠, 비참함, 절망을 선고받은.... 걸어다니는 송장"이라고 말한다. ....

노화에 관한 보부아르의 암울한 논문은 분명 본인이 처한 상황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책을 쓸 당시 부브아르는 예순 살이었고 그때까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우수했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 보부아르는 노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은'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에릭 와이너가 만든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 보다 나는 그가 열세 살 딸에게 한 말이 더 좋다. 

 

* 소냐에게

  모든 것을, 특히 너 자신의 질문을 물으렴. 경이로워하는 세상을 바라보렴. 경건한 마음으로 세상과 대화하렴. 사랑을 담아 귀를 기울이렴. 절대로 배움을 멈추지 말렴. 모든 것을 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가지렴. 네가 원하는 모든 높이의 다리를 건너렴. 네가 가진 시시포스의 돌덩이를 저주하지 말렴. 받아들이렴. 사랑하렴. 아, 맥도날드는 좀 줄이려무나. 

 싫음 말고, 그건 너의 선택이니까.  (475쪽)

 

* 보부아르가 나이 듦에 집착한 것처럼 몽테뉴는 죽음에, 더 정확히 말하면 죽어가는 과정에 집착했다. 몽테뉴는 "내가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기까지의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생각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심지어 '숙녀와 게임에 둘러싸여 있었던 내 인생 가장 방탕한 시절'에도 몽테뉴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4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