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아네스 바르다의 말 / 아네스 바르다, 제퍼슨 클라인

칠부능선 2022. 3. 31. 20:52

 

몇 해 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본 게 아네스 바르다와 첫 만남이었다. 

이 책은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년간 바르다가 행한 20편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바르다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자신을 주변인이라 여기며 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예술로 새 영토를 개척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만을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다. 

누벨바그의 대모로 칭하는 그는 말년까지 왕성한 창작욕을 보인다. 암 합병증으로 90세에 사망. 

 

 

* 피에시 :  의뢰받은 영화를 만들면 아무래도 풍자적 요소를 가미하게 되나요?

  바르다 :  저는 풍자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아요. 웃는 건 좋아하죠.  (이 영화의 제목을 '에덴동산'이라고 지을까도 생각     했어요.) 하지만 풍자는 누군가를 조롱하는 걸 암시하잖아요. 의뢰를 수락하면 일단 지루한 영화를 만들지는 말자는       생각은 들어요. 그건 분명해요. 그럼에도 풍자보다는 부드러운 유머를 구사해야 하죠.  (78쪽) 

 

* 바르다는 깨어 있는 동안에도 말을 하지 않은 채 몇 날 며칠을 보내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누아르무티에섬에서 지내는 경우 그렇다. 그곳엔 두 사람이 소유한 풍차가 있다. "그곳에서 우린 침묵 속에서 생활하고 일해요. 그는 무언가를 쓰고, 저도 뭔가를 쓰죠. 우린 서로가 하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만족스럽죠. 남자와 여자는 말없이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우린 믿어요. 그래서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실상 그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럴 경우, 말이란건 사실 필요치 않죠. 그런 환경에서 대화를 한다는 건 그저 가족 놀이를 하는 거예요. " (105쪽)

 

* 아마도 제가 하는 작업은 목격자로서의

  작가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해요.

  저는 '작가주의'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147쪽)

  

* 앨런 : 앞서 감독님께서 자신이 누벨바그의 대모라 일려져 있다고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이런 세간의 평가를 칭찬으로  여기시나요? 아니면 좀 거슬려 하는 편이신가요?

 바르다 : 칭찬으로요! 마지막보다는 최초가 낫잖아요. 저는 개척자였고, 개척자는 언제나 모험을 추구하죠. 저 역시 많은 영화적 모험을 감행했고요. 할리우드로 가서 <라이온의 사랑>이란 영화를 만들고, 그 밖에 다양한 영화도 만들었는데, 그리 많은 사람들이 접하지는 못했어요. 여전히 평범치 않은 영화들을 만들고 있고, 같은 걸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이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314쪽) 

 

* 워릭 : 영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이 든 모습의 자신을 떠올리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요. 

  바르다 : 하하, 그래요. 제 손주들이 저를 '마미타 핑크'라고 부르는 거 아세요? 꼭 무슨 스트리퍼 이름 같죠! 아주 마음에 ㄷ르어요. 저는 제 자신이 여전히 농담을 즐기고 핑크적인 행동을 한다는 게 기뻐요. 대부분의 지면에선 영화의 첫 문장인 "나는 작고 통통한 노숙녀다"를 즐겨 인용하는데, 그 다음 문장이 더 중요해요. "내가 좋아하는 건 타인들이다. 타인들이 나의 흥미를 끈다. 그들은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 이 부분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에요.  (360쪽)

 

* 우리는 이제 원숙한 바르다를 만난다. 그의 즉흥적인 몸짓 하나, 말 한마디는 이제 그대로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된다. 영화를 하고 있거나 다른 예술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따스한 위로와 에너지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공식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바르다는 언제나 해변에서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반갑게 맞아준다.  (406쪽)

 

 

 

 

2019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60여 년에 이른 영화 창작 인생 <아네스가 말하는 바르다> 발표. 사망하기 한 달 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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