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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1000과 청개구리 / 조후미

T 1000과 청개구리 조후미 나는 청개구리다 내가 청개구리임을 미리 밝히는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나 때문에 열 받거나 혈압이 올라 뒷목을 잡을 수도 있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이유에서다 과거의 나는 빨간 불에 멈추고 파란 불에 가며 규정 속도를 준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 몸속 DNA 저 깊숙한 곳에 저장된 청개구리 유전인자가 오랜 시간 은밀하게 숨어 지내다 최근에야 정체를 드러냈다 하라는 일은 하기 싫고 금지된 일은 더 하고 싶어졌다 남의 말은 드럽게 안 듣는 데다 최 씨도 울고 갈 똥고집이 온몸을 친친 감고 도전자들에게 내 고집을 꺾어보라며 치기 어린 강수를 든다 한때는 웰빙이 대세였고 최근에는 욜로와 미니멀 라이프가 여러 매체에서 오르내리지만 아 뭐래 나는 복세편살하련다 이런 ..

산문 - 필사 + 2022.06.16

고전적 정수기 / 침묵 - 노정숙

고전적 정수기 노정숙 모던한 아파트 주방 안쪽에 둥글넙적한 물항아리가 턱 앉아계신다 아침이면 환하게 엘이디 등불을 물 위에 띄우신다 어미는 고개 숙여 물 한바가지 퍼올린다 저 지극하게 굽은 어미의 등, 모든 어미는 머리 조아리기 선수다 쉿! 조왕신이 기침하신다 침묵 노정숙 반복하는 묵음 연주, 존 케이지의 에 빠졌다. 고요 속에서 내 숨소리와 한숨소리 모든 숨 붙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격렬한 음을 느낀다. 몸 안 톱니바퀴는 곳곳이 헐거워져 느리게 돌아간다. 나는 나사를 조이려 조바심치지 않는다. 낡아서야 벙그는 묵음의 세계, 위로의 손길이 스민다. 2022년 여름호. 통권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