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 23

'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 / 김 현

‘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 김현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것 자체가 마치 기름물감의 계속적인 덧칠처럼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로 덧칠되며, 그 풍경을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

산문 - 필사 + 2022.07.25

제9회 성남문학축전 / 만나고 싶었어요

3년 만에 대면 행사를 했다. 성남 시청 온누리홀 600석이 헐렁하지는 않았다. 로비에 전시한 시화등도 여럿이니 볼만하고, 진행도 순조롭게 제 시간에 마쳤다. 모두 수고많았다. 나는 이제 '고문'이니 칭찬하고 박수만 쳐주면 된다. 가벼워서 좋다. 오늘 여운이 남은 건 정용준 소설가의 말이다. 문학적으로 살자... 결국 속살을 잘 느끼고 살자는 말. 본질을 보자는 이야기다. 문학은 역사에 남는 거대서사가 아니라 역사 뒤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일이다. 100마리 양 중에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예수의 비유는 잃어버린 한 마리는 그냥 한 마리가 아닌, 영이나 철수, 마이클이라는 거다. 메모를 못해서 정확치는 않지만 이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전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자임과 10시에 만나 신용산역에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갔다. ​ 사진은 복재를 넘어 작가의 철학이 담긴 창의적인 예술이 되었다. 작품마다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확실한 내 목소리 내기를 생각했다. ​ ​ 어마무지하게 큰 사진, 미술관 크기도 대단하다. 육중한 기둥의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작품이 이를 압도한다. 모든 작품 해석은 독자의 몫이지만, 이 사진전은 작가의 의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55년생, 동시대를 살아서 더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 있다. 요즘 가장 높게 느끼는 게 '세대의 벽'이 아닌가. ​ ​ ​ ​ ​작가의 신작으로 뒤셀도르프 근처 라인강변 목초지에서 얼음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규정에 얽매여 있는 일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 ​ ​ 은..

작별하지 않는다 / 한 강

제주 4.3에 대해 쓰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읽는 것도 힘들었다. 책을 주로 밤에 주루룩 읽는데... 도무지 밤에 읽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마음까지 들면서. 토욜 반포에 결혼식을 잠깐 다녀오고 내내 읽었다. 짬짬이 긴 쉼을 가지며. 오래 전, 제주에서 빈첸시오 활동하면서 만난 4.3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도 쉬쉬하던 이야기였다. 꿈으로 시작해서 현실과 꿈이 오가는 느낌,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 찐득하게 따라붙는다. 책과 놀지 못한, 불편한 독서였다. 이렇게 시작한다. *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

놀자, 책이랑 2022.07.17

글친구

최 시인의 책을 읽고 김 선생님이 폭풍 칭찬을 한다. 권 샘의 책을 읽고 최 시인이 감탄, 감탄을 한다. 전에는 최 시인이 김 선생님의 책을 사서 읽고 폭풍 칭찬하는 바람에 분당으로 식사 초대를 했었다. 그 답례 겸, 또 최 시인이 수필 팀을 초대했다. 백운호수 근처 식당들이 많이 바뀌었다. 이곳도 처음 갔는데 큰 규모에 사람이 꽉 찼다. 일찍 예약을 해 두어서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최 시인과 김 선생님은 오로지 페북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 사이에 시와 수필,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내가 있다. 음식도 맛나게 먹었고, 최 시인의 세 가지 간증을 들은 게 오늘의 대화에 주된 내용이었다. 뜨거운 에너지, 맑은 마음이 내게도 전이되기를. 한참 식사하는데 창밖에 칠면조가 기웃거린다. ㅋㅋ 식당 윗채에 ..

별들의 시간 / 이윤학

별들의 시간 이윤학 지척에서 보았던 그 사람 얼굴을 잊고 살았다 고개를 들고 바라본 그 사람 눈동자 고운 입김으로 그 이름 부르기 위해 겨울 산 정상에서 흐흡을 가다듬었다 새벽하늘은 망설임의 통로를 헤매다 발견한 그 사람의 확대된 눈동자였다 그 사람 이름 속으로 불러보면 소멸한 은하가 다시 태어나 뜨거운 피가 돌고 설렘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눈물이 번지지 않는 혹한의 시간 글썽이며 흩어진 별들의 파편을 그 사람 눈동자로 돌려주기 적당한 시기 수편의 별들이 수직의 별들로 바뀐 시간을 거슬러 그 사람에게 돌아가기 적당한 시기 이 세상에서 살기 불가능한 별들을 그 사람을 닮은 새벽별들을 그 사람의 눈동자에 파종한 적이 있었다

시 - 필사 2022.07.15

농부 / 이윤학

농부 이윤학 초등학교 졸업 후 그는 줄곧 농부였다 폐암에 걸린 지금도 그는 농부로 살아간다 스무 날이 남았다고도 한다 이제 열흘이 남았다고도 한다 그보다 더 안 남았다고도 한다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농부여서 모자를 쓰고 토시를 낀다 장화를 신고 여름 담배밭에 들어가 담뱃잎을 따 리어카에 싣는다 그는 새카많게 말랐지만 안마당까지 리어카를 끌어다 놓을 힘은 남았다 그는 마루에 드러누웠다 일어나 안마당에 전깃불을 밝힐 것이다 담뱃잎을 엮어 비닐하우스에 널 것이다

시 - 필사 2022.07.14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 이윤학 산문집

이윤학 시인은 오래 전 로 만났다. 페북에서 신간 소개를 보고 주문했다. 천생 시인인 그의 시 밖의 삶에 맘이 착 가라앉는다. 왜 이리 짠한가. - 작가의 말 한 사내가 떠난 외동 빌라의 끝 층 픽스창, 무수한 내륙등대 불빛이 모여 있었다 지붕 밑 외벽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둥지 밑 폐 전화선에 앉아 서로 거리를 벌리다 좁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기를 반복한 끝에 날이 새고 있었다 오늘은 은둔형 외통이 사내가 떠난 빈집에 들어가 십 년을 살고 나왔다 책 한 권 들고 어둑해진 골목길 어깨 높이 화단 턱에 걸터앉았다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곁에 앉아 언제가 불쑥 부르고픈 노래가 있었다 * 나는 지금껏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샘물은 차오르면서 불순물을 걸..

놀자, 책이랑 2022.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