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23

선한 그들 / 노정숙

선한 그들 노정숙 바리톤 정경의 오페라마 「우리 가곡 전상서」를 보러갔다. 건물 입구에서 열 체크를 하고, 공연장 앞에서는 QR코드 확인을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무대라서 설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넓은 공연장에 의자가 스물 남짓이다. 오페라와 드라마를 합성한 오페라마를 만든 정경 교수는 토, 객, 한, 맥, 연, 한국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주제에 맞춰 한국가곡에 깃든 역사의식을 일깨우며 열창했다. 우리 경제를 일으킨 기성세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했지만 역사적 배경까지 알리는 이런 노래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공연 끝부분에 관객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다. 한 관객이 성악과를 지망하는 고3에게 들려줄 말을 청했다. ‘예술가는 광대로서 남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를 주는 것이..

청폐탕과 무조청

토욜, 사위가 15일만에 퇴원했다. 8킬로가 빠졌다고 한다. 친구가 내게 두 번이나 만들어준 무조청을 만들어서 딸네 집에 갔다. 레시피를 받아보니 보통 정성을 들이는 게 아니다. 나는 그나마 차 트렁크에 절반을 쏟았다. ㅠㅠ 우째 이런 일이... . 차에서 식혜냄새가 진동한다. 어쨌거나 첫 번은 절반 실패, 다시 제대로 만들어야지. 나눌 사람이 많다.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한 사위가 제일 타격이 크다. 죽을만큼 아팠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너무 이른 퇴원인 듯도 싶다. 일산병원에서 코로나 마지막 환자라고 한다. 아이들이 건강하니 다행이고, 딸도 회복한 듯하여 다행이다. 사위는 이 상태에서 건강 챙기면 좋겠다. 8킬로 빠져서야 예전 얼굴로 돌아왔다. 친구는 병원에서 일주일 앓고 지난 주 토욜부터는 다 나은..

피로사회 / 한병철

얇지만 묵직한 책이다. 과잉 긍정이 피로사회를 만든다.  피로사회는 스스로를 착취한다. '깊은 심심함'을 추구해야지. 이것 역시 강박일 수 있다. 2010년에 독일에서 발표한 는 각광을 받았다.11년이 지난 2021년, 바이러스로 인해 팬데믹이 되었다. 전 세계가 공통의 질병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론 면역학적 기술로 우리는 이겨낼 것이고, 이 사태에서 무언가 얻을 것이다.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서두다.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인플루엔자의 대대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

놀자, 책이랑 2021.06.28

땅의 예찬 / 한병철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땅에 꽃나무를 심고 가꾸며 쓴 3년동안의 정원일기다. 휠더린의 시와 슈만의 음악이 함께 흐른다. 땅의 예찬이 무에 새롭겠는가, 그럼에도 순수한 청년스러움에 푹 빠져든다.    * 한국에서 미선나무 군락지는 일종의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는다. '나무 Namu'란 한국어로 '나무Baum' '미선'은 한국의 전통부채를 가리킨다. 꽃이 부채 모양이어서 미선나무라는 이름이 되었다. 아름다운 이름. 내게 아들이 있다면 이름을 '나무'라고 지을 것이다. 딸이 있다면 '미선' 또는 '나비'라고 지을 것이다.  (56쪽) * 나는 그늘을 좋아하는 꽃들을 몹시 사랑한다. 내 이름 '병철'은 밝은 빛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림자가 없다면 빛은 빛이 아니다. 빛이 없이는 그림자도 없다. 그림자와 빛은 한..

놀자, 책이랑 2021.06.24

이런 모독 / 노정숙

이런 모독 노정숙 올해가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년이다. 그가 1996년에 티베트와 네팔을 다녀와서 쓴 책을 다시 읽었다. 첫 장에 ‘98.11.6 盧貞淑’이라고 쓰여 있다. 그때는 새 책을 사면 이런 표시를 했다. 지금은 가능하면 흔적 없이 본다. 밑줄 치고 싶은 부분엔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필사한다. 깨끗하게 보고 읽을 만한 사람에게 준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나는 티베트, 네팔을 가보지 못해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한참 후 딸의 결혼식 날짜를 받아놓고 딸과 함께 인도를 거쳐 네팔을 다녀왔다.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분명 이 여행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이것도 혼수라고 생색을 냈다. 인도를 거쳐서 당도한 네팔의 첫인상은 참으로 순박하다고 생각했는데, 박완서 선생이 티베..

민망한 개선장군

격리 열흘이 끝났다. 8시 30분에 퇴소 절차를 밟고, 택시를 불러 9시 40분에 집에 도착했다. 남편의 격리는 나흘이 더 남았다. 청소도 잘 하고 화분에 물도 주었고... 세탁기 돌렸다는 데서 빵, 터졌지만. 양호하다. 그런데... 나는 열흘 동안 몸무게가 1도 줄지를 않았다. 남편은 집에 먹을 게 지천인데도 걱정하고 잠 못 자느라 3킬로가 줄었다고 한다. 집에서 한두 끼니 겨우 먹는데,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입이라도 대니.... 그리고 운동량은 없고. 그래도 좀 염치없다. 이제 친구도 회복세고, 사위도 회복 중이다. 날짜만 잘 지나길 바란다. 대녀는 성게, 문어죽을 보냈고, 누군 고기를 보내왔고, 초당옥수수도 와 있다. 자가격리자를 위한 구호물품도 한 박스 와 있다. 그야말로 장 안 보고도 한참 살겠..

흔들리며 볕바라기

베란다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잘 찍은 풍경이다. 왼쪽의 저 위 도로로 아침이면 퇴소자를 실은 차가 나가고, 오후에는 새 사람을 태운 구급차가 들어온다. 그리곤 적막~~~ 개망초의 낭창한 허리는 잔바람에도 살랑거린다. 초록이 주는 위로에 젖는다. 어제 저 아래서 사람의 모습을 처음 봤다. 나름 운동을 하고 있는 듯, 아무렇지도 않았던 풍경이 애틋해지는 시간이다. 이곳의 패턴을 다 외웠다. 아침 7시가 지나면 방송이 시작된다. 아침식사를 준비할 것이니 복도에 인기척이 나도 절대 문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방송이다. 그 후 아침식사 준비가 끝났으니 속히 방으로 가져가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리고 한 시간 쯤 지나면 소독을 할 것이니 시끄러워도 문을 절대 열면 안 된다는 방송. 이어 점심, 저녁도 그렇게 진행된다. 인..

격리, 산을 넘다

절반을 넘긴 건 고지가 코앞인 거다. 오늘 아침, 다행히 친구가 열이 떨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사위는 아직도 고열과 통증을 오가고 있다. 그래도 병원에 있으니 믿고 기다려야지. 아들 내외는 내일 퇴소 예정이고, 딸도 이변이 없으면 토욜 퇴원한단다. 한가로운 시간이 흘러가는데 여유로운 마음이 안 든다. 경험해도 좋은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해야 하는 또 다른 경험인 게다. 이제 무조건 달려드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는 듯하다. 무한 긍정 마인드라도 나로 인한, 아니, 나도 피해자이지만.... 넘들의 번거로움과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창밖 풍경을 내다보니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린다. 반가운 바람, 아직 볕이 내리지 않은 이른 시간, 오늘도 내내 고요할 게다. 오늘이 대학로 연극을 보러..

격리생활

격리, 두 밤 자고 사흘째다. 난 어디서나 적응을 잘해, 이렇게 세뇌를 하며 새 시간을 맞는다. 방송과 휴대폰으로 소통하고, 인기척만 느끼고 인기척에 가까이 다가가면 절대 안 된다. 나를 보여줘서도 안 되고, 누군가를 봐서도 안된다. 이런 세상이라니. 누구는 책 실컷 읽겠다고 했는데... 그건 늘 집에서 하는 일이기에 이곳에서 책을 덮어두기로 했다. 책을 멀리 하고, 티비를 가까이 두었다. 이곳 티비는 6개 정도 체널이 나온다. 그 중에 EBS 를 주로 본다. 집에서 안 보던 티비가 신선하다. 밥은 양이 많다. 절반도 못 먹고 버린다. 적당한 공복감도 간간이 느끼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그립다. 매끼니 나오는 고기반찬, 쳐다만 봐도 벌써 니글거린다. 지금 여기서는 평소에 많이 못하던 짓을 해야한다.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