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 19

줌으로 만나다 - 서행구간

지난 5월 김동숙 작가 응원차 갔던 서행구간, 그때 잡은 날짜가 7월 16일이었다. 그 널널하던 시간이 지나갔다. 코로나 4단계로 7월 30일 줌강의로 전환했다. 나는 줌강의를 해 본 적이 없고... 일단 서행구간으로 가서 도움을 받았다. 이틀 전, 있던 글과 공시사 광고파일을 아들한테 보내서 급하게 PDF 자료도 만들었다. 14쪽 짜리로 겨우 모양새만 흉내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어리바리 횡설수설 ...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현장에 세 분이 오셨다. 다행히 눈 맞추고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화면으로 15명이 들어왔다. 거의 내 책을 읽은 분들이다. 이렇게 얼굴을 보여주니 마음이 편안했다. 화면만 보고 강의를 한다면 얼마나 뻘쭘할까, 소통없이 어떻게 말을 이어가나 걱정했는데. 얼굴 보여주신 분들..

등 / 이정록

등 이정록 암만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첫애 업었을 때 아기의 입술이 닿았던 곳이다 새근새근 새털 같은 콧김으로 내 젖은 흙을 말리던 곳이다 아기가 자라 어딘가에서 홧김을 내뿜을 때마다 등짝은 오그라드는 것이다 까치발을 딛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손차양하고 멀리 내다본다 오래도록 햇살을 업어보지만 얼음이 잡히는 북쪽 언덕이 있다 언 입술 오물거리는 약숟가락만한 응달이 있다 -계간 2021년 봄호

시 - 필사 2021.07.29

지는 사랑 / 권혁소

지는 사랑 권혁소 낡아보니 사랑할 나이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겠다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만큼만 사랑을 할 뿐 그런 건 없다, 하물며 이제 막 헤엄치기를 마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그대에게야 말해 뭣 하겠는가 사랑을 잃고 시를 얻다니, 이런 행위가 삶을 경외하는 마지막 자세라고 슬픈 자위를 해보긴 하지만 더 많은 상처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휘파람을 불어주는 일도 버겁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사랑이 저문다 숨자, 어느 숲에든 몰래 들어가 조용한 바람에도 격하게 이파리를 떠는 관목灌木이라도 되자, 그대와 나 비록 실패하는 사랑에 매진했으나 아직 세상엔 못다 한 사랑이 많이 남았으니 사랑이 진다고 싸움을 부를 일만은 아니다 저무는..

시 - 필사 2021.07.26

미안함에 대하여 / 홍세화

에 게재한 칼럼을 묶은 책이다.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그의 생각에 머리는 끄덕이며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아주 오래전 그가 를 그만두고 돌아왔을때 그의 강의에 간 적 있다. 아담한 체구에 맑은 얼굴이었다 그때는. 여자들이 많은 강의실에 좀 수줍은 표정이었지만, 여자들이 몰려다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뜨끔했다. 그때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내 습성을 반성했다. 앞 날개 작가 소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회사원, 관광안내원, 택시기사에 이어 신문기자와 소수파 진보정당의 대표를 거쳐, 급기야 은행장의 직함까지 갖게 되었다. 주식도 없고 스톡옵션도 없는,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일 것이다. .... 나는 『양철북』의 소년도 아니면서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

놀자, 책이랑 2021.07.24

횡설수설

숨탄 것은 모두 명命이 있다. 4개월 지난 호접란이 저리 꽃을 피우고 있다. 무더위에도 꽃망울을 끝까지 터트렸다. 그러나 꽃은 아쉽게 이울어야 꽃이다. 처음 귀한 맛이 많이 없어지지 않았는가. 그러고보니 별 투정을 다 한다. 무더위에 앵초가 녹아내리고 있는데... 오늘 아들 생일인데 모이지는 않았다. 며늘이 전화해서 '잘난 아들 낳아줘서 제가 호강한다며 고맙다'고 한다. 참으로 천생연분이다. 아직도 콩깍지가 안 벗겨졌으니 행운이다. 코로나 4단계가 2주 더 이어진다. 원래 한여름과 한겨울은 내 독서의 계절이지만 .... 좀 답답하다.

삶의 격 / 페터 비에리

, 이라는 제목에 끌려 산 책이다.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물론 달달하지는 않다. 다 아는, 짐작되는 사항을 정리해준다. 내가 읽지 않은 많은 소설들을 등장시켜서 이해를 돕는다. 다시 읽어보니 서문의 희망사항이 딱 맞는다. 페터 비에리는 파스칼 메르시에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소설을 썼는데 그 중 내가 아는 건 다. "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은 없었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아.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말로 정리해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사고의 주변에 머무를 뿐 명확하고 뚜렷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것들도 실제로는 아주 많다는 것을 저자가 숨기지 않았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나는 목표를 이루었다고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 서문 * 돈에 관한 지..

놀자, 책이랑 2021.07.22

악의 평범성2 / 이산하

악의 평범성2 이산하 "불교 승려들이 숲을 지날 때 혹 밟을지도 모르는 풀벌레들에게 미리 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방울을 달고 천천히 걷는다는 말에 난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을 밟아버렸던가." 득음의 경지에 이른 어느 고승이나 성자의 얘기가 아니다.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일리히 히믈러의 말이다. 전 친위대원을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만들고 가난하고 소박한 생을 최고의 삶으로 꿈꾼 사람이기도 했다. 악의 비범성이 없는 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우리의 혀는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시 - 필사 2021.07.19

가장 위험한 동물 / 이산하

가장 위험한 동물 이산하 몇년 전 유럽여행 때 어느 실내동물원을 구경했다. 방문마다 사슴, 늑대, 사자, 악어 같은 동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방문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고 깊이 새겨져 있었다. 호기심에 얼른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은 텅 비었고 정면 벽에 커다란 거울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내 얼굴이 크게 비쳤다. 시집 에서

시 - 필사 2021.07.19

백백홍홍난만중 / 오봉옥

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 오봉옥 창문을 열었더니 마당에 알록달록한 별들이 떨어져 있었다 엄마별들 사이에 드문드문 애기별도 눈에 띄었다 저 별은 누가 살았기에 붉은 가슴을 가졌을까 저 별은 무슨 꿈이 남아서 아직도 노란 옷을 입고 서성거리는 것일까 저 별은 무엇이 서러워 오도 가도 못하고 상복을 입은 채 앉아있을까 사랑을 앓는 이는 붉은 별이 되고 꿈꾸는 이 노랑별이 되고 못견디게 그리운 자는 죽어서 흰 별이 되는 것일까 살아서가 아니라 죽어서 백백홍홍난만중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말, 하얗고 붉은 꽃이 만발하게 피었다는 뜻

시 - 필사 202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