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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 김계수

무허가 김계수 버스 정류장 25시 편의점 앞 함양댁 식당이 헐리고 있다 함양댁 허리둘레 같은 무허가 기둥이 헐린다 김씨가 내일 새벽 공사판 일만 있었더라면 박씨가 한 병 더 마시자는 김씨의 부탁을 들어주었더라면, 길 잃은 고양이가 김씨에게 늦은 저녁을 구걸하지 않았더라면, 소주병을 비울 때마다 높아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좁다란 평상이 평평하게 잡아주었더라면, 함양집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더러 사람의 품과 품에도 함부로 낯선 정이 드는 법인데 이까짓 무허가가 무슨 대죄냐고 땅을 두르리며 함양댁이 말했다

시 - 필사 2021.07.09

길을 내다 / 김계수

길을 내다 김계수 밭둑 드나드는 자리 키 넘어 자라 달아오는 살딸기나무 오가는 나를 염려하여 길 쪽으로 뻗은 가지 서넛 잘라내었다 붉어지기 전 살 올라 두툼한 노랑, 다음 날 다시 밭을 오르니 잎과 가지는 쪼그라져 말라가고 내 염려를 벗어났던 노란 열매가 잘렸던 가지에서 익어가고 있다, 빨갛게 그 잘린 가지와 잎에서 밤새 끌어모았을 수고로 기어코 붉게 영그는 나에게는 그저 웃자란 가시였을 저것이 가만히 붉게 살아가고 있다 그 마른 가지 옆으로 다시 길을 내었다 시집에서

시 - 필사 2021.07.09

ㅅ / 윤은영

ㅅ 윤은영 어릴 적 나는 늘 나무를 거꾸로 뒤집어놓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하늘과 땅이 뒤집히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서기는 반에서 글시를 제일 잘 쓰는 아이 서기는 나만 할 수 있는 나에게만 뜨거운 직책 서기는 꼭 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단단한 뜻을 가진 동사의 명사형 나는 서기에 임명되어야만 했다 위독했던 할머니를 뒤로하고 개학 전날 서기가 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할머니는 개학날 돌아가셨고 나는 서기를 포기하기 싫어 장례식을 포기했다 과연 나는 나쁜 사람일까 서기가 되면 매일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의 눈길을 받을 수 있어 도망간 엄마 나를 내팽개친 아빠를 잊을 수 있어 학교는 기쁨 학교는 늘 서 있는 곳 꿈에서 내 심장을 갈라 보았다 시옷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새겨놓은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새..

시 - 필사 2021.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