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길을 내다 / 김계수

칠부능선 2021. 7. 9. 08:07

길을 내다

김계수

 

 

밭둑 드나드는 자리

키 넘어 자라 달아오는 살딸기나무

오가는 나를 염려하여 길 쪽으로 뻗은

가지 서넛 잘라내었다

붉어지기 전 살 올라 두툼한 노랑,

 

다음 날

다시 밭을 오르니

잎과 가지는 쪼그라져 말라가고

내 염려를 벗어났던 노란 열매가

잘렸던 가지에서 익어가고 있다, 빨갛게

 

그 잘린 가지와 잎에서 밤새 끌어모았을 수고로

기어코 붉게 영그는

나에게는 그저 웃자란 가시였을 저것이

가만히 붉게 살아가고 있다

 

그 마른 가지 옆으로 다시 길을 내었다 

 

 

 

<흔들리는 것이 부끄러움은 아니기에> 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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