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 32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우러를 어른으로 박경리 선생님을 꼽는다. 이건 유고시집이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 박경리 책 표지에 이 말씀부터 맘이 확 열리며 동감한다. 박완서 선생은 이 시집에 대해서 "유장하고도 도도했다. 길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시라는 짧은 형식 속에 당신 전체를, 그늘까지를 명주실 꾸리처럼 최소한의 부피로 담아내신 솜씨가 놀라웠다. 이건 솜씨로 된 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시가 와서 당신은 그냥 받아쓰기만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꾸밈없이 자연스러웠다." 라고 했지만, 내 느낌은 대부분이 시적장치가 없는 내면의 진술로 이루어진, 진솔한 수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꾸밈없이 단방에 들어오는 고백에 완전 무장해제, 편안하게 끌려간다. 그냥 고개를 마냥 끄덕..

놀자, 책이랑 2021.08.23

태경 생일

토욜 태경이네가 왔다. 사위는 코로나 격리 후 처음이다. 닭발, 족발, 보쌈을 시키고... 셀러드와 호박, 가지전과 와인 두 병, 소주 두 병 클리어~~ 일욜 태경 생일이다. 남편은 봉투 셋을 준비해서 편지까지 써서 나누어준다. 태경, 시경, 사위에게 뭐라뭐라 쓴 당부의 말씀이 새겨지길. 내 선물은 생일상과 책 2권이다. 케잌도 아침 일찍 남편이 사왔다. 외할아버지 노릇을 단단히 한다. 이 쵸코케잌이 태경이 90% 맘에 든단다. 태경, 시경의 인기투표에서 당당 1위가 외할아버지란다. 꼴찌 6위는 친할머니, 잔소리대마왕이란다. 딸네집에 냥이가 두 마리 있는데, 큰 냥이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실밥 뽑은 상태라서 이 작은 냥이를 데리고 왔다. 이제 2개월 된 프린은 천방지축이다. 얘는 세상 맛을 모른다. 쏜살..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 예술평론가 - 수전 손택 첫 장을 넘기니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큰 글씨와 함께 고통스러운 사진들이 펼쳐있다.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 전쟁의 기아와 폭력의 적나라한 사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연민으로 시작하는 감정이 굳어져 행동이 되지 않는, 감정의 굳음을 경계한다. 처음, 담배곽에 담긴 끔찍한 사진을 보며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으려고 할 가능성이 60배가 높아진다. 그러나 5년이 지나면, 그 이미지가 건네주는 공포에 익숙해졌다. 잠이 안 오는 밤이다. 초저녁에 읽기 시작해서 날이 훤히 밝아온다. 책을 덮으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불을 켜고, 오지 않는 잠을 포기했다. 수전 손택의 날카로운 사유와..

놀자, 책이랑 2021.08.18

특별한 만남 - 임택 대장

마을버스 여행팀이 만났다. 4단계에 맞춰 4인. 백운호수 카페 로rrroh에서 브런치 널찍한 우리만의 공간, 숲 속에 앉아 있는 듯. 백운제빵소에서 팥빙수 , 1일 2 카페스 11시 30분에 만나서 6시까지. 엄청난 이야기 파티, 종횡무진 임택 대장의 책에 없는 세계여행 이야기와 그 후 이야기, 박완서의 에서 나오는 그 식당에 같이 있었다는 이야기며, 그때 그 아주머니가 박완서인지도 몰랐다는 대목에서 너무 웃겼다. 자신이 세계를 여행하고 오니 젊은이들에게 더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16명의 여행경비를 대 줬다고 한다. 그 우여곡절 후에 그만 둔 이야기며, 줄줄이 잡혀있는 의미있는 여행계획들, 나체로 다닌다는 인도의 사두 친구와 카톡 대화는 완전 서로 콩글리시~~ 너무 신선하다. 올해 환갑인 그..

지중해의 영감 / 장 그르니에

밑줄 긋고 싶은 곳이 많은 책이다. 가만히 슬퍼지기도 하고, 어딘가로 푹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 책도 지중해 여행기가 아니다.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탐구. (아, 난 시작이 '탐구'였는데.) 지중해를 거느린 곳들에서의 사색과 통찰이다. 이탈리아, 그리스의 박제된 역사에 숨을 불어넣는다.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풍경이 존재한다. ... 지중해는 그 특유의 선들과 형태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으로 진리를 행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곳에서는 빛의 도취경 그 자체가 명상의 정신을 고양시킬 따름이다. - 1939년 7월 '서문' 중에서 * 모로코의..

놀자, 책이랑 2021.08.17

시詩가 나에게 / 유안진

시詩가 나에게 유안진 아직도 모르겠어? 한번 발들이면 절대로 못 빠져나오는 사이비종교가 ‘나’라는 것을 받침 하나가 모자라서 이신 신神이 못되는 어눌한 말인 걸 쓸수록 배고파지는 끝없는 허기 쓰고 보면 제정신 아닌 남루뿐인 ​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소설가 화가 음악가… 와는 달라서 만 번을 고쳐죽어도 일가는 못되느니 시 쓰며 인간이나 되라고 아닌가 꿈 깨게, 문여기인文如其人 잊지 말고.

시 - 필사 2021.08.17

경이로움 / 비스와라 쉼보르스카

경이로움 비스와라 쉼보르스카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 번뿐인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자리도 아니..

시 - 필사 2021.08.15

여행하는 나무 / 호시노 미치오

알레스카다. 여행기가 아니라 삶의 기록이다. 퇴촌, 서행구간에서 사 온 책이다. "이 책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은데 고민이 좀 됩니다. 왜냐구요? 훌쩍 떠나고 싶으실 듯 해서요. 갑자기 내가 디디고 있는 상황들에서 너무 벗어나고 싶을 수도 있구요. 나는 지금 무얼하며 사는건가...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질지도 모릅니다. " - 서행구간 쥔장, 주안님이 띠지로 써 놓은 글이다. 알레스카, 기회가 올까. 언제일지 알수 없지만, 기회가 온다면 몸을 일으킬 것이다. 모처럼 푹 빠져서 알레스카 설원을, 태평양 빙하를 떠돌며 그 자연 모습을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프랭클린 언덕의 헌책방 주인 D할머니, 파일럿 돈 로스, 에스키모 친구 알, 그의 영웅 빌 폴로 ... 주변이 다 멋진 사람들이다. 두세 번 울..

놀자, 책이랑 2021.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