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 32

천성 / 박경리

천성 박경리 남이 싫어하는 짓을 나는 안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내가 싫은 일도 나는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반기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발검음을 끊었다 자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실은 일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의지보다 감정이 강하여 어쩔 수 없었다 이 경우 자식들은 예외였다 그와 같은 연고로 사람 관계가 어려웠고 살기가 힘들었다 만약에 내가 천성을 바꾸어 남이 싫어하는 짓도 하고 내가 싫은 말도 하고 그랬으면 살기가 좀 편안했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며 지레 지쳐서 명줄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

시 - 필사 2021.08.10

밤 산책

일주일만에 문밖을 나갔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집순이 기질도 다분했던거다. 책읽고, 눈 아프면 영화보고, 청탁받은 글을 계속 생각하고 ... 지난 주에 친구가 잠깐 다녀가고, 그것도 떡이랑 화분을 문앞에서 주고 갔지만. 전혀 심심하거나 답답하지가 않았다. 어제 이종동생과 통화 중에 집콕 중이라니까, 언니,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바람도 쏘이고 땅을 밟아야 한다고. 저녁 먹고 그 생각을 떠올리며 벌떡 일어나 탄천에 나갔다. 아, 그런데.... 사람 물결이다. 얼른 자주 안 다니던 판교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그곳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바람이 그리운 게다. 해바라기야, 해가 없어서 그러니. 왜 이리 추레해보이니. 까짓 해 따위 따라다니지 말지 그래. 소나무 숲길이 우리집 가까이에 있다. 내 정원이라 생각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동네책방 에서 데려온 책이다. 순전히 책의 띠지에 낚였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표4까지. "이 책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어떤 것에 대해 쓰더라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집요한 글쓰기는 다시 없을 장관을 펼쳐놓는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1962년생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짧은 삶을 살고 갔다. 명성과 악명을 동시 얻은 그는 죽기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유서를 썼다. 일주일 동안의 호화 크루즈 여행의 기록인 은 내내 삐딱하게 투털거리는 시각을 따라가다가 비실비실 실소가 나온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가 떠오른다. 그 보다 더 시니컬하게 엉킨다. 내가 북유럽 여행에서 짧게 경험한 신세계였던 크루즈는 이코노미 크루즈였던거다. 아홉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의 유머는 알아들을 수가 없고, , ..

놀자, 책이랑 2021.08.09

무경계 / 캔 윌버

허순애 수필집 를 읽으며, 오래전에 읽다 둔 를 찾아들었다. 군데군데 거칠게 줄친 부분이 있는데도 생소하다. 2016년8월 12일 초판 12쇄다. 어려운 말 없이 읽혀지는데, 자주 멈췄다. 오래 침대 머릿맡을 차지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앞에서 나는 여전히 헤맨다. * 전반적인 인간행동의 연구를 지칭하기 위해 '심리학'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받기 바란다. 그 단어 자체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마음'이지 '몸'이 아니라는 편견을 보여준다. 성프란치스코조차 자신의 몸을 "불쌍한 나귀형제"라고 불렀다. 대부분 사람들이 마치 나귀나 노새를 타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제 몸 위에 '어딘가 올라타' 있는 듯 느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31쪽) *늙은 고양이는..

놀자, 책이랑 2021.08.07

여행, 영혼의 씻김굿 / 문육자

문육자 선생님은 오래 전 수필의 날, 행사에서 같은 버스를 탔다. 눈인사만 나누었는데 갸날픈 체구에 눈이 깊고 반짝이던 기억이 난다. 백백엔 무거운 카메라가 있었던 것도. 책을 받자 마자 주욱 읽었다. 내 역마살을 들썩이기에 충분했다. 먼 여행이 막혀있는 이 시점에서 울렁이며 숨통이 트였다. 세상에나~~ 곁에 있었으면 계속 읖조렸을 말이다. "대단하세요." 지구 곳곳에 발자국을 찍었다. 내가 가본 곳보다 못 가본 것이 훨씬 많다. 주로 혼자 다니는 것도 대단하다.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날이며 축복의 날임을 믿기로 하고 내보일 수 있는 건 작품 밖에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 여행이란 내게 무엇이었던가. 씻김굿을 보면서, 영혼을 말갛게 헹구어 하늘로 보내는 그 행위가 내겐 여행이라고 느껴졌다. 해..

놀자, 책이랑 2021.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