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무경계 / 캔 윌버

칠부능선 2021. 8. 7. 19:45

허순애 수필집 <무경계의 지점에서>를 읽으며, 오래전에 읽다 둔 <무경계>를 찾아들었다. 

군데군데 거칠게 줄친 부분이 있는데도 생소하다. 2016년8월 12일 초판 12쇄다.

어려운 말 없이 읽혀지는데, 자주 멈췄다. 오래 침대 머릿맡을 차지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앞에서 나는 여전히 헤맨다. 

 

 

* 전반적인 인간행동의 연구를 지칭하기 위해 '심리학'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받기 바란다. 그 단어 자체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마음'이지 '몸'이 아니라는 편견을 보여준다. 성프란치스코조차 자신의 몸을 "불쌍한 나귀형제"라고 불렀다. 대부분 사람들이 마치 나귀나 노새를 타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제 몸 위에 '어딘가 올라타' 있는 듯 느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31쪽)

 

*늙은 고양이는 죽음이 임박했다고 해서 공포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숲으로 들어가서 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죽음을 맞을 뿐이다. 병든 울새는 버드나무 가지에 편안히 앉아 황혼을 바라본다. 그러다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조용히 땅에 떨어진다. 인간이 맞이하는 죽음의 방식과 얼마나 다른가. (47쪽)

 

*동양인들은 한 번도 경계라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다. 경계가 그들의 머릿속을 독점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과 자연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멀리 동떨어진 적이 없다. 동양인들에겐, 인간이 만든 경계투성이 지도 밑에 잠복해 있는 전체성을 시사하는 오직 하나의 길 way, 도, 법Dharma만이 있었다. (83 쪽)

 

*불사의 초월적 존재로 깨어나기 위해서는 허구의 분리된 자아로부터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죽기 전에 죽으면, 죽을 때 죽지 않는다"는 유명한 역설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신비가들의 격언에서는 "철저하게 죽은 사람만큼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종의 초개아적 '요법'을 일관성 있게 실천해온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25 쪽)

 

*명상수련은 초월적 진리에 대한 우선적 헌신으로서 하루 24시간 내내 숨 쉬고 직관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직관한다는 것은 근원적 서원에 따라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그 '나'의 실현에 자신의 전 존재를 쏟아붓는 것이다. "중생이 아무리 많이 존재하더라도, 나는 그들 모두의 해탈을 서원하노라. 진리가 아무리 비길 데 없는 것일지라도, 나는 진리의 실현을 서원하노라." 현재의 모든 상황을 지나서 무한無限 자체에 이르기까지 내려놓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실현시키는 일에 깊은 헌신의 정을 느낀다면, 영적 수행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길이될 것이다. 부디 이번 생에서 영적 스승을 만나는 은총과 지금 이 순간에 깨달음을 얻는 은총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