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여행하는 나무 / 호시노 미치오

칠부능선 2021. 8. 13. 18:03

알레스카다. 여행기가 아니라 삶의 기록이다. 

퇴촌, 서행구간에서 사 온 책이다.

"이 책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은데 고민이 좀 됩니다. 왜냐구요? 훌쩍 떠나고 싶으실 듯 해서요. 갑자기 내가 디디고 있는 상황들에서 너무 벗어나고 싶을 수도 있구요. 나는 지금 무얼하며 사는건가...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질지도 모릅니다. "

- 서행구간 쥔장, 주안님이 띠지로 써 놓은 글이다.  

 

알레스카, 기회가 올까. 언제일지 알수 없지만, 기회가 온다면 몸을 일으킬 것이다. 

모처럼 푹 빠져서 알레스카 설원을, 태평양 빙하를 떠돌며 그 자연 모습을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프랭클린 언덕의 헌책방 주인 D할머니, 파일럿 돈 로스, 에스키모 친구 알, 그의 영웅 빌 폴로 ... 주변이 다 멋진 사람들이다. 

두세 번 울컥, 했다. 목울대가 따가웠다. 눈물이 시원하게 흐르길 기다렸다.

 

 

* 카리부의 새끼가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태어나는 것도, 한 마리의 검은방울새가 영하 60도의 추위 속에서 즐겁게 지저귀는 것도 단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모든 생명에게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또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연약함도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 가진 그 연약함 때문에 알래스카를 사랑합니다.  (46쪽)

 

* 100년 전쯤 알래스카를 여행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알래스카를 찾지 말아라. 인생의 마지막 고비라고 느껴질 때 그곳을 찾아라."

  알래스카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생명이 살아가기엔 최악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최악의 조건에서 사람은 자기 안에 숨겨진 진정한 생명력을 깨닫습니다.  (76쪽)

 

* 원래 돈은 미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가 어떤 이유로 신분이 보장되는 직업을 버리고 홀로 알래스카 벌판을 날아다니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돈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이다. 겨울만 되면 그는 아프리카로 날아가 난민 캠프에 물자를 공급하는 자원봉사에 참가하곤 한다. (136쪽)

 

* 태평양전쟁은 제국주의에 물든 일본이 영토확장을 목적으로 일으킨 맹목적인 전쟁이었다. 반면에 미국에게 제 2차 세계대전은 파시즘을 차단하기 위한 성전 聖戰이었다. ... ...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참혹함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깨닫지 못한다. ... 

 몇 년 전 <푸른 바다여, 잠들라 - 미드웨이 해전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을 읽은 다음에야 이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89쪽)

 

* 사냥에 성공한 에스키모들은 짐승의 영혼을 달래고, 그 희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알래스카의 율법이다. 에스키모들은 자신들 또한 늑대와 고래와 곰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곰의 피를 마셨지만, 내일은 곰이 나의 피를 마실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한 생명을 희생시켰듯이 자연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살릴 권리가 있다. (245쪽)

 

*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과에 상관없이 지나온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진정 의미을 갖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생일 것이다. (299쪽)

 

 

 

 

                  1952년생 호시노는 16세 고등학생때 배낭 하나 메고 배를 타고 미국을 2개월 다녀왔다. 

                    사진 한 장, 한 권의 책이 소년을 꿈꾸게 한다. 그는 훗날 사진을 찍고 글도 쓴다. 

                               그 운명의 사진 작가를 만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