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지중해의 영감 / 장 그르니에

칠부능선 2021. 8. 17. 10:22

 밑줄 긋고 싶은 곳이 많은 책이다. 가만히 슬퍼지기도 하고, 어딘가로 푹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 책도 지중해 여행기가 아니다.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탐구. (아, 난 시작이 '탐구'였는데.)

지중해를 거느린 곳들에서의 사색과 통찰이다.

이탈리아, 그리스의 박제된 역사에 숨을 불어넣는다.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풍경이 존재한다. ... 지중해는 그 특유의 선들과 형태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으로 진리를 행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곳에서는 빛의 도취경 그 자체가 명상의 정신을 고양시킬 따름이다. 

 - 1939년 7월 '서문' 중에서

 

 

* 모로코의 집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지붕에 돌 하나가 부족하게 만들어놓고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은 언제나 다 한계가 있음을 표시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걸 보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 점을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 편이 더 낫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존재가 아니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 부족한 빈 부분에 해당하는 충만을 다른 곳에서 찾기 위해서 그 점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그리하여 나는 가끔 밤 산책을 할 때면 예언자의 소맷자락 한 끝을 붙잡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55쪽)

 

* "여자를 멀리하고 학문에 전념하다" 베네치아 여자가 루소에게 한 이 말이 그는 이탈리아에서 사는 모든 이유를 날려버린다. 북쪽 나라 사람은 다름아니라 살아가면서 한 번쯤 정열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이 배웠던 것을 잊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간다. (92쪽) 

 

* 노엘 베스페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삶은 절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절약하기보다 창조하기 위해서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아니 한 걸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을 헐뜯고 허물어뜨리기보다는 창조하기 위해서, 지신의 창조를 굳게 믿기 위해서 더욱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131쪽)

 

* 시대가 혼란스럽다고? 모든 시대는 다 혼란스러웠다. 혁명과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어왔다. 시는 덧없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스탕달은, 러시아 원정에 따라갔다는 점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만, 소설 『파름 수도원』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는 더할 수 없이 의미를 지닌다. 샤토브리앙은 우리가 볼 때 교황청대사로서 시간낭비만 했지만 로마의 들판을 헤매던 그의 몽상들... 그러니까 이를 테면 허송세월했다고 말하는 그 시간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  (179쪽)

 

* 인간의 삶은 그 덧없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것이 된다. 인간은 마치 이 세계가 중요한 것이라도 되는 양 세계 내에서 일할 수 있고, 또 세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 미리부터 그 결실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하는 태연한 활동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에 요구되는 것은 .... 어떤 충실성이다.  (220쪽)

 

 

 

 

 

                                    바부탱이, 이 책도 또 있었네. 1995년 9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