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서행구간>에서 데려온 책이다.
순전히 책의 띠지에 낚였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표4까지.
"이 책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어떤 것에 대해 쓰더라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집요한 글쓰기는 다시 없을 장관을 펼쳐놓는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1962년생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짧은 삶을 살고 갔다.
명성과 악명을 동시 얻은 그는 죽기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유서를 썼다.
일주일 동안의 호화 크루즈 여행의 기록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내내 삐딱하게 투털거리는 시각을 따라가다가 비실비실 실소가 나온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가 떠오른다. 그 보다 더 시니컬하게 엉킨다.
내가 북유럽 여행에서 짧게 경험한 신세계였던 크루즈는 이코노미 크루즈였던거다.
아홉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권위의 미국 영어 여행>의 유머는 알아들을 수가 없고,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좀 읽혔다.
<재미의 본질> 마저도 재미는커녕 역설의 역설을 헤아리며 서늘해졌다.
<랍스터를 생각해봐> 그 냉소적 재치에 다시 실소를.
신형철이 소개한 '집요한 글쓰기의 장관'에 푹 빠지지는 못했다. 내 과문이다.
* 랍스터는 기본적으로 큼직한 바다 곤충이다. 대개의 절지동물처럼 랍스터도 기원이 쥐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
랍스터가 바다의 청소부로서 죽은 동물들을 먹고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밖에 산조개류와 특정 종류의 다친 물고기도 먹고 가끔은 서로 잡아먹기도 한다.
랍스터는 그 자체로도 먹기 좋다. 적어도 요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1880년대까지만 해도 랍스터는 말 그대로 하층계급의 음식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만 먹었다. 초기 미국의 감옥 환경이 가혹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식민지 수감자들에게 랍스터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이는 것을 법으로 금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꼭 사람에게 쥐를 먹이는 것처럼 잔인하고 지나친 고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309 쪽)
*젊은 작가들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기꺼이 인생을 바칠 경우, 여러분은 우리가 그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한다고 믿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돈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 이유란 글쓰기가 예술이고, 예술은 의미이고, 의미는 힘이라는 것이다. ...
어쩌면 가장 뛰어난 이들은 아직 한 명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중 두엇은 심지어... 독학자일 수도 있다.
(449 쪽)
*당신이 처음에 글쓰기를 통해서 벗어나고 싶었거나 가장하고 싶었던 당신의 부분, 바로 그 재미없는 부분을 직면함으로써 이제 글쓰기의 재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역설이다. 그러나 이 역설은 어떤 종류의 구속도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선물이고, 일종의 기적이다. 그리고 이것에 비한다면, 낯선 사람들의 애정이라는 보상은 한낱 먼지에, 보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4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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