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27

시인회의 - 전어비빔밥

3개월 만에 한 시인댁에서 만났다. 엊저녁에 그물을 쳐놓고 오늘 아침 전어와 새우, 삼치를 잡아왔다며 한 상을 차렸다. 시 합평은 잠깐 하고 많이 먹고 오래 수다를 풀었다. 백낙청, 도올, 임우기, 김지하의 이야기가 오늘의 공부였다. 오랜만에 나도 '불편한 진실'을 합평했다. 12시에 가서 5시에 일어나는데, 홍시 한 팩씩을 안겨보낸다. 이 후덕함...

수의 / 이산하

수의 이산하 며칠째 눈이 내려 수의처럼 세상을 계속 덮는다. 나는 내가 몇 초 뒤에 뭘 생각할지도 모르고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죽을 때를 알아 4년 전부터 수의를 짜고 마침내 그날이 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준 ‘백 년 동안의 고독’ 속의 아마란타처럼 나는 아직 수의를 짜지도 못하고 설령 그날이 와도 내가 가진 것이 없으니 먼지 같은 내 여윈 살 외에는 나눠줄 수가 없구나. 다만 아마란타처럼 내 많은 지인들이 먼저 죽은 이들에게 보낼 고해성사 편지를 써오면 내가 차질 없이 전해주겠다는 약속만은 꼭 지키리라. 수의가 세상을 돌돌 말아 관 속에 넣고 못을 박는다. * 인문교양 월간지 '이산하 시인의 짧은 시' 연재(2020.11)

시 - 필사 2021.09.28

세여자 / 조선희

1920년, 청계천으로 여겨지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세 여자의 사진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세 여자는 무산자계급 해방에 일생을 바칠 것을 맹세하며 혁명활동가 임원근, 박헌영, 김단야와 동지적인 부부가 된다. 그러나 혹독한 시대의 부침에 부부의 의리와 인연을 끝까지 이어가지는 못한다. 상해와 경성,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 뉴욕, 타이페이, 남경, 무한.... 등지를 오가며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걸었다. 세 여자의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로운 영혼과 치열한 삶에 경의와 애도를 보낸다. * 마르크시즘의 시작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우정이었다. 또한 볼세비키의 뿌리는 1825년 차르체제에서 귀족 중의 귀족인 근위대 청년장교 신분으로 차르에 도전했다 총살다하거나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죽..

놀자, 책이랑 2021.09.28

티하우스 1박

딸네랑 키즈팬션 티하우스에서 1박을 했다. 나는 세 번째 방문, 가족들과는 처음이다. 태경 시경이는 키스팬션이 시시할 줄 알았는데, 잘 논다. 구석구석 쥔장의 부지런한 손길이 닿아 있다. 저녁은 바베큐, 다음날 아점은 닭백숙으로 포식, 남편은 하루 동안도 많은 경험을 한 탓인지 며칠 논 기분이 든단다. 1급수가 흐르는 뒷 계곡이 일품이다. 저 바닥 데크를 옮긴 대 노역을 하고.... 쥔장이 준비해준 토종 간식, 완전 자연 방치, 태평농법으로 자란 사과나무... 승진왈 "무섭게 생긴 사과네" 시커먼 사과를 깎으니 뽀얀 속살이 나온다. "맛은 좋네" ㅋㅋ 꼴보다 맛이다. 추워서 수영은 못하고 보트놀이~ 비올때도 놀 수 있는 하우스 안 놀이터 팬션 사무실에 냥이~` 어린이 놀이도 하고 숯불 바베큐 먹고 나서 ..

낯선 길에서 2021.09.28

사리재 옛길 / 강정숙

사리재 옛길 강정숙 물쑥대 우거진 갈대밭을 끼고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걷고 달리는 길 끝에 오래 묵은 버드나무 한 그루 쓰러져 있다 마치 세기말의 풍경같이 디귿자로 누운 나무는 둥치는 썩고 잎사귀만 살아있다 저 수많은 잎사귀는 나무가 내뱉는 신음 같아 그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오금이 당긴다 내 죄가 아니지만 내 죄인 것만 같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데도 살아보겠다고 안감힘 쓰는 임종 앞둔 병자 같고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받으며 겨우겨우 연명하는 그녀 같다 이 세상 하직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은 나무를 위해 넘치는 곡哭으로 비통을 달래주는 공릉천, 다음 생을 기약하듯 습지를 적신다 버드나무 가지마다 바람이 인다 올해는 또 어떤 비가 내려 버드나무 한 그루 쿵, 넘어뜨리려나 잊혀져 가는 옛날처럼 ..

시 - 필사 2021.09.24

추석 지나가다

네플릭스 영화를 와장창 보면서 한가롭게 추석이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실화가 바탕인 게 대부분이다. 수필적 시선 ? 이다. * 아버지는 산을 움직였다 * 빅토리아 압둘 * 몰리스 게임 * 블라인드 사이드 * 씨크린 더 무비 * 쵸콜렛 - 줄리엣 비노쉬와 죠니 뎁을 보는 것만도 좋다. * 리플리 - 머리 좋은 사람이 악인인건 극강 악이다. * 디센던트 - 하와이 섬이 배경인데 낭만은 없다. 서늘한 현실. 친구가 맛있는 송편을 잔뜩 사다줬다. 대녀가 보내준 모싯잎 송편과 인절미도 있는데... 언니네서 토란국을 먹었다. 정갈한 상차림에 또 바리바리 싸주고.

어머니와 호미 / 김용만

어머니와 호미 김용만 여쨌든 돌은 무겁다 오랜 세월 하고 싶은 말들 가슴에 묻고 살았기 때문이다 돌멩이는 흙의 사리다 어머니는 이 세상 사리다 나는 오늘 밭에서 돌을 줍다 자루 빠진 호미 하나 주웠다 막막한 세상 얼마나 후벼 팠을까 내 정신 좀 봐 띈전띈전 저 호미 찾았을까 닳고 닳아 가벼워진 요양병원 어머니인 듯 애리다 울다 지친 눈부신 봄날 어머니가 밭 가상에 돌 던지던 소리 얼마나 깊고 아득했던가 자꾸만 호미 끝에 치이는 돌멩이들 서럽게 울어쌓는 산비둘기들

시 - 필사 2021.09.19

날라리 추석

명절이 이렇게 할랑한 시간으로 오다니... 지난 화욜 도곡동 숙부님댁에 들러 두 분을 모시고 인천 큰고모님댁에 다녀오는 것으로 시댁 인사를 치뤘다. 97세 큰고모님은 점심을 준비해두셨다. 출근한 며늘이 회를 시키고 매운탕을 끓여놓았다. 두어 시간 옛이야기를 듣고... 어제 토욜 아들, 며늘과 딸네 식구가 왔다. 아들이 주문한 물회와 회로 점심을 먹었다. 센 값이 용서될 정도로 충분히 맛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지만, 아이들을 위해 갈비찜을 해 놓았는데 예상대로 태경, 시경만 먹었다. 조카딸들이 와서 모두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싱글인 시누이 딸들을 보고 남편은 맘 아파한다. 큰조카는 살이 너무 빠졌다면서... 엄마 체질을 닮았다. 부모와 떨어져 있으니 나도 늘 마음은 쓰이는데 해 준 게 ..

허 시인과 서행구간

금욜, 오래 전에 약속해둔 만남이다. 늘 말인사만 건네다가 실천. 곤지암 허정분 선생님과 퇴촌 윤 시인을 만나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서행구간에 갔다. 서행구간은 세 번째다. 윤 시인이 이 서점 자리가 예전에 슈퍼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반가워한다. 서점 오픈 1년이 넘었단다. 열렬한 시간의 흔적들... 70세인 허정분 시인, 생각했던 그대로의 품성인데 농사를 지으면서도 참 고우시다. 글로 오래 만난 사리라서 인지 금새 솔직한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 내게 가졌던 인상이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평안함이라고 한다. 그거 좋은 게 아니라고 하니,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험한 시간을 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내 '눈치없음'을 돌아봤다. 윤일균 시인이 페북에 올린 사진을 데려왔다. https://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