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스티브 안녕, 스티브 노정숙 돌 지난 손자가 '아니' '시러'를 야무지게 한다. 요즘은 아기들도 제 주장이 강해서인가, ‘좋아’ ‘싫어’를 분명하게 표현한다. 제 엄마 아이폰을 가지고 잘 논다. 그림을 살피며 쓱쓱 밀어서 여는 법을 알아내고 제 눈에 익은 그림을 톡 건드려서 열고 까르르 웃는.. 수필. 시 - 발표작 2012.01.10
열흘 만에 떠난 안경 열흘 만에 떠난 안경 노 정 숙 안과에 갔다. 곱상하게 생긴 젊은 의사가 '중년안'이라며 말도 예쁘게 한다. 예전에는 노년층에게 나타나서 노안이라고 부르던 눈 노화 증상이 요즘은 30대 후반부터 온다고 해서 중년안, 원시안이라고 한단다. 게다가 들어본 적도 없는 '컴퓨터시력.. 수필. 시 - 발표작 2011.12.05
기행수필 작품론 [작품론] 노정숙 수필의 철학적 독서-존재 미학과 소통으로서의 변주 한상렬 hsy943@hanmail.net 1. 들어가기 최근 우리 시대의 글쓰기는 ‘발표’라고 하는 제도권 내에서의 자기 증식의 욕망과 상당히 관련되어 있다. 이는 발표 행위의 누적을 통해 인지도를 획득하고 나아가 문단권력 또는 .. 수필. 시 - 발표작 2011.11.30
멈춰버린 시계 멈춰버린 시계 노정숙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갔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02분에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손뼈와 유리가 엉겨 붙고. 까맣게 타버린 몸, 철모에 붙어버린 두개골이 참혹하다. 피폭시 유품들과 그때의 참상을 느끼게 하는 조형물이 늘어섰다. 당시의 아비.. 수필. 시 - 발표작 2011.05.26
술꾼, 글꾼 술꾼, 글꾼 노정숙 폭음을 했다. 몸이 한물 간 건지 전에 없이 한 순간에 확 가버렸다. 3차로 간 라이브 카페에서 옛날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로 돌아갔나 보다. 단발머리 시절에 문학의 밤에서 들었던 ‘Take me home country road’, 조금 더 커서 좋아했던 ‘님은 먼곳에’를 들으며 열렬하게 .. 수필. 시 - 발표작 2011.03.09
내 침대 내 침대 노정숙 아테네의 뒷골목이다. 아라베스크풍의 철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뒤통수를 당기는 한기를 느끼긴 했다. 요괴 문양이 쌍으로 새겨진 침대를 보면서 죽음의 낌새를 알아챘어야 했다. 그때 벽마다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나 보다. 비릿한 냄새와 음울한 기운으로 인해 온 몸에 .. 수필. 시 - 발표작 2010.10.08
거절의 기술 거절의 기술 노정숙 매섭게 거절을 당했다. 공적인 부탁이었는데 그는 안하겠다며 단칼에 끊었다. 화상전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내 망가진 표정을 감출 일이 난감했다. 그러나 목소리도 얼굴 못지않게 정직하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떨떠름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으리라. 나를 황당하게 한 그는 그.. 수필. 시 - 발표작 2010.08.23
그는 떠났다 북카페 /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그는 떠났다 노정숙 요즘 4대가 한 지붕 아래서 북적인다. 동경에 사는 딸이 외손자를 데리고 둘째를 낳으려 친정에 왔다. 병원에서 검진하는 일은 왜 그리 잦은지. 산달이 가까워지니 매주 초음파를 통해 태아의 머리와 다리, 가지런한 등뼈까지 훤히 들여다보.. 수필. 시 - 발표작 2010.02.18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노정숙 이따금 바람이 필요하다. 태풍이 불어 바다 깊숙이까지 뒤집어 주어야 바다가 썩지 않듯이 내 영혼에도 한바탕 강풍이 불어 가라앉은 기운을 휘저어 주어야 한다. 그 바람이 차고 습해서 류머티즘이 함께 올지라도 지금은 밀어낼 처지가 아니다. 통도사 템플스테이에 갔다. 일주문 .. 수필. 시 - 발표작 2010.01.08
죽음에 이르는 법 죽음에 이르는 법 노정숙 어머니가 쓰러지자 ‘난 죽었다’고 생각했다. 깔끔하고 자존심 강한 어머니가 한 순간에 아기가 되어버린 것에 당황했다. 육체가 정신을 놓아버린 속수무책의 시간들이 흘렀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죽을 정도는 아니다. 여든 살 넘도록 건강하셨으.. 수필. 시 - 발표작 200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