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기록 패자의 기록 아르코 회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문학은 패자의 기록이라고, 패자의 구구한 변명과 참회의 기록이 문학이라고 한다. 글을 좀 못쓰는 것도 ‘선행’이라고, 그래야 잘 쓰는 사람이 돋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시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별 볼일 .. 수필. 시 - 발표작 2007.03.21
갈월리의 겨울 갈월리의 겨울 밤 사이 흰눈이 쌓였다. 반겨줄 사람은 없지만 갈월리로 향한다. 텅 빈 듯 한적한 마을에 낮선 손님을 중 개 두 마리가 맞는다. 순한 눈빛으로 거동을 살피며 조금의 거리를 두고 따라온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초라했던 몰골을 풍성하게 가려준다. 흰색의 순수 앞에 찌든 일상.. 수필. 시 - 발표작 2007.02.20
불안 불안은 … ‘불안은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죄에 가까이 가 있다는 것, ‘생각’ 까지도 죄의 범주에 넣는 도덕성으로 본다면 그 무거운 부담감은 경고의 의미다. 며칠 전, 의사가 오빠에게 더 이상의 역할을 포기하며 ‘준비’를 시켰다. 폐에 필요 없는 물이 차고 신장.. 수필. 시 - 발표작 2007.02.10
겨울이 위로다 겨울이 위로다 지난 봄, ‘봄이 싫다’는 K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짧은 시간에 파산에 가까운 돈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주변 사람들을 불러 함께 하는 성격이어서 피해가 더 컸다. 언제나 밝은 모습에 넉넉하고 사려 깊은 그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 누군가 경고했.. 수필. 시 - 발표작 2007.01.05
칭찬박수 칭찬박수 짝 짝 짝짝짝 칭찬칭찬 행사 뒤풀이에서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박수를 유도한다. 다섯 번의 박수 끝에 ‘칭찬칭찬’이란 구호와 함께 두 손을 펼쳐 주인공을 향해 바치는 시늉을 한다. 행사준비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박수다. 금세 칭찬이 둥둥 떠다녀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것을.. 수필. 시 - 발표작 2006.09.21
에쿠우스 에쿠우스 노 정 숙 그의 등에 살짝 올라앉았다. 나를 밀어내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잠시 온몸이 굳었다. 미끈한 그의 잔등을 맨몸으로 부딪치고 싶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두툼한 안장이 그와 나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시켜 주었다. 스페인의 어떤 마에스트로는 말 앞에 서기 전에는 옷을 단정하게 입.. 수필. 시 - 발표작 2006.09.02
좋은 죽음 좋은 죽음 컵이 깨졌다. 산산조각 난 파편을 수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야향화 화분에 물을 주고 옮기는데 화분이 두 동강이 났다. 물에 젖은 흙이 아이보리색 카펫을 점령한다. 우산을 떨어뜨리고, 쓰레기통을 넘어뜨리고 잡는 것마다 미끄러져 나간다. 이 황망함이라니. 내 몸에서도 기가 다 .. 수필. 시 - 발표작 2006.07.28
파도타기 파도타기 “왜 그게 하고 싶은데요.” 인공 파도타기를 하고 싶다니까 아들의 눈이 커진다. 오십이 넘은 엄마는 더 이상 엄마가 아니고 어머니로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인가. 여름, 한낮 볕이 따갑다. 친구들과 물놀이공원의 북새통에 용감하게 끼어들었다. 수영복 위에 긴 남방과 구명조끼, 챙 넓.. 수필. 시 - 발표작 2006.07.03
죽어도 좋을, 저녁 죽어도 좋을, 저녁 친구의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들이 신경전을 벌인다. 2남 2녀의 다복한 가정은 어느새 서로 비난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일상을 돌봐줄 사람을 찾으니 모두가 거래조건을 먼저 따진다고 한다. ‘사랑은 없다. 다만 .. 수필. 시 - 발표작 2006.07.01
아름다운 축제 [새아침을 열며] 아름다운 축제 2006/06/20 노정숙 수필가 우리는 광장으로 나왔다. 방에 갇혀있던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대명제를 걸치고 거리로 나왔다. 4년 전, ‘작가는 모름지기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꼬드김에 빠져 딸내미의 붉은 티셔츠를 찾아 입고 시청앞 광장으로 나갔다. 그동안 뭉치고 싶었.. 수필. 시 - 발표작 2006.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