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양귀비꽃 노정숙 세기를 앞서 간 시인의 삶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초판 출판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도 보들레르의 시는 묵은내가 나지 않는다. 시대의 감수성과 문제의식은 시공을 넘어 현실의 고뇌와 존재 자체의 절망을 공감하게 한다. 정확하고 분명한 문체, 리듬감을 살린 간결한 표현으로 천상.. 수필. 시 - 발표작 2008.01.13
받아주세요 받아주세요 나 삼문 벼랑에 서서 *그대를 기다리렵니다. 땅에 닿는 순간 내려온 것들은 황홀하다는 그대의 말에 동의합니다. 황홀한 죽음의 이불을 걷고 신생의 언어로 내게 오세요. 바람과 놀던 습성을 한량없이 지니고, 바람에 흩어져 없어진 것들 털어 버리고 그냥 오세요. 벗에게 두 번의 절은 받.. 수필. 시 - 발표작 2007.12.02
그 사람, 윤택수 그 사람, 윤택수 김서령이 쓴 ‘그에게 열광하다’를 읽고 어찌 윤택수를 찾아보지 않겠는가. 윤택수가 기억하는 유소년 시절의 풍경은 우리 산과 들에 지천인 숨 붙어 있는 모든 것과 관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절절하다. 쉰다랑, 은굴, 가맛골, 소라실 - 새뜻한 우리말이 때굴거리고, 샤머니즘과 유.. 수필. 시 - 발표작 2007.11.20
불협화음 불협화음 노정숙 가슴이 두근거린다. 얼굴이 하얀 의사는 살짝 미소까지 띠며 말한다. 지금 내 심장의 상태는 빈혈이 심해서 내가 편히 누워있을 때도 100미터 달리기 중이라고 한다. 내 혀가 달큼한 유혹에 노닐고 내 눈이 깜빡 즐거움에 빠진 시각에도 심장은 저 홀로 숨이 가빴던 것을 .. 수필. 시 - 발표작 2007.08.24
정중히 사양합니다 정중히 사양합니다 전시회장 입구에 꽃들이 줄을 섰다. 맨 앞줄에 꽃대 몇을 겨우 내밀고 수줍게 서있는 소심, 그 옆엔 은은한 연록색 꽃잎을 매단 한란, 멀리서 온 덴파레의 오종종한 홍자색 꽃송이가 늘어졌다. 벽에 기대 멀대같이 서 있는 삼단 화환은 줄서기에서 열외다. 고 예쁜 것들, 아직 다 피.. 수필. 시 - 발표작 2007.05.31
진부와 통속 진부와 통속 - 노 정 숙 ‘실망하지 않고 사는 것.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것. 시작하는 것. 기도하는 것.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는 것’ 묵상집의 짧은 글이 졸고 있던 나를 깨웁니다. 실망하지 않고 어떻게 이 진창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실망을 각오하고 부딪치며 나아.. 수필. 시 - 발표작 2007.04.26
패자의 기록 패자의 기록 아르코 회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문학은 패자의 기록이라고, 패자의 구구한 변명과 참회의 기록이 문학이라고 한다. 글을 좀 못쓰는 것도 ‘선행’이라고, 그래야 잘 쓰는 사람이 돋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시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별 볼일 .. 수필. 시 - 발표작 2007.03.21
갈월리의 겨울 갈월리의 겨울 밤 사이 흰눈이 쌓였다. 반겨줄 사람은 없지만 갈월리로 향한다. 텅 빈 듯 한적한 마을에 낮선 손님을 중 개 두 마리가 맞는다. 순한 눈빛으로 거동을 살피며 조금의 거리를 두고 따라온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초라했던 몰골을 풍성하게 가려준다. 흰색의 순수 앞에 찌든 일상.. 수필. 시 - 발표작 2007.02.20
불안 불안은 … ‘불안은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죄에 가까이 가 있다는 것, ‘생각’ 까지도 죄의 범주에 넣는 도덕성으로 본다면 그 무거운 부담감은 경고의 의미다. 며칠 전, 의사가 오빠에게 더 이상의 역할을 포기하며 ‘준비’를 시켰다. 폐에 필요 없는 물이 차고 신장.. 수필. 시 - 발표작 2007.02.10
겨울이 위로다 겨울이 위로다 지난 봄, ‘봄이 싫다’는 K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짧은 시간에 파산에 가까운 돈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주변 사람들을 불러 함께 하는 성격이어서 피해가 더 컸다. 언제나 밝은 모습에 넉넉하고 사려 깊은 그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 누군가 경고했.. 수필. 시 - 발표작 200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