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멈춰버린 시계

칠부능선 2011. 5. 26. 23:56

 

멈춰버린 시계 

노정숙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갔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02분에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손뼈와 유리가 엉겨 붙고. 까맣게 타버린 몸, 철모에 붙어버린 두개골이 참혹하다. 피폭시 유품들과 그때의 참상을 느끼게 하는 조형물이 늘어섰다. 당시의 아비규환이 박제되어 있다. 다음 전시관에는 원폭이 투하되기까지의 경과와 실물크기 모형과 단면도까지 보여주며 끔찍한 파괴력을 상세히 알린다. 그러나 원폭 투하로 마감된 전쟁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피력은 어디에도 없다.

  나오는 문 가까이에서 묵주를 손에 감고 있는 나가이 다카시의 초췌한 모습을 만났다. 그가 쓴 수필 <묵주알>을 읽으며 감동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온통 잿더미였지만 나는 금방 발견했다. 부엌이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검은 덩어리들. 그것은 탈대로 타버리고 남은 골반과 요추였다. 곁에 십자가가 달린 로사리오의 사슬이 남아 있었다. 불에 탄 양동이에 아내를 주워 담았다. 아직 따뜻했다."

  책에서 읽은 광경을 실제로 보며 가슴 깊이 뜨거운 것이 치민다. 그러나 글에서 처음 만난 원폭의 참상에 대한 충격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원자력에 노출되어 백혈병에 걸린 몸으로 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원폭 장애에 대한 연구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군국주의 천황제 아래서 국가에 대한 비판의식이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는 다만 충실한 신앙인이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인 피해자의 시신은 누구도 돌보지 않은 채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 아픔을 달래기라도 하듯 일본인 화가의 그림이 자료관 로비에 걸려있다. 폭염 속에 썩어 가던 피폭 조선인의 시신에 달려든 까마귀떼 사이로 흰 치마 저고리가 떠가는 그림이다. 전쟁의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는 일본인이 있기도 하다.

 

  원폭자료관을 지나 평화공원에 이르렀다. 공원 입구에 검은 모자상을 보며 가슴이 서늘했다. 축 늘어진 아기를 안고 있는 비통한 어머니의 모습에 고개 숙인다.

  평화공원 안쪽에 원폭투하 지점 기념탑이 있고, 탑 오른쪽에는 피폭 당시 부서진 우라카미 천주당 벽의 잔해를 옮겨놓았다. 상처투성이 붉은 벽돌 꼭대기에 조각상이 그대로 있는 것이 놀랍다. 모퉁이 계단을 내려가니 원폭지점 지층을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가재도구들이 녹아서 돌, 모래 사이에 뒤엉켜 있다. 산산조각 난 파편들이 화석처럼 박혀있다. 그 심란한 잿빛 틈에서 고사리모양의 풀이 자라고 있다. 연둣빛 생명이 장하다.

  '평화기념상'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튼튼한 체격은 절대자의 신위를 내보이며 온화한 얼굴은 신의 사랑을, 감은 눈은 전쟁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치켜든 오른손은 원폭의 무서움을 경고하고, 옆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권하는 모습이며, 구부린 오른쪽 다리는 명상을, 세운 왼쪽 다리는 움직임을 상징한다.

  과도한 의미를 담은 이 평화의 상징은 아무리 봐도 평화스럽지 않다. 웅대한 크기부터 심하게 부풀린 근육이며 어깨와 목에는 잔뜩 힘이 들어 있어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이것을 만든 기타무라 세이보는 침략전쟁을 이끈 수많은 군국주의자들과 군신상을 만든 인물이다. 이들의 평화 개념 앞에 마냥 씁쓸해진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입구에는 '더 이상 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누구를 향한 참회의 언명인가.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 2만 여명이 피폭을 당했고, 그중 1만 여명이 폭사했다. 보상 문제에서도 한국인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비참하게 살다 참혹하게 죽은 이들에게 누가 사죄를 해야 하는가. 과잉 진압한 미국인가, 전쟁을 시작한 일본인가.

  원폭으로 무고하게 죽은 일본인들도 분명 피해자다. 그러나 피해자이기 전에 저 군국주의자들은 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가해자다. 일본은 원폭자료관을 찾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반핵운동과 평화운동의 선두주자로 표정을 바꾸면서 과거사를 오도하고 있다. '반핵' 이전의 '반전'을 모르는 얼굴이다.

  입구부터 내내 따라다니던 종이학 군단, 색색으로 접은 크고 작은 종이학들이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왠지 추레하다.

  피해자로서의 일면만을 내세워 이곳을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기막힌 일이다. 역사상 가장 역설적인 평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세계에서 단 하나인 원폭의 피해국으로써 잘 포장된 평화공원과 처참한 피폭지를 관광 상품으로 팔고 있다. 과연 이들은 경제제국답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더 지났건만, 나라 밖에서는 물론 나라 안에서도 굴욕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의 만행을 사죄하기는커녕, 강제징용과 정신대 문제에 대한 태도는 우리의 부아를 치밀게 한다. 일본의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주도했던 세력들은 견고하게 이어지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우익세력들은 여전히 막강하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의 군국주의 망상은 지금도 진행 중인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거에 대한 책임은 없지만, 제대로 알아야 할 책임이 있다. 용서는 참회와 사과에서 나온다. 뉘우침 없는 저들을 대신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힘없음을 참회하고 용서해야 하는지. '가해'의 사실은 망각한 채 '피해'만 부각시키는 저들을 언제까지 바라만 봐야하는지, 답답하고 한심하다.

  평화공원 옆에 작은 강이 혼자 평화롭게 흐른다.

 

<한국산문>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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