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 장영희 하필이면 장영희 몇 년 전인가 십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중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사가 대충 이랬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 산문 - 필사 + 2010.08.05
받들어 올리기와 내려 파기 / 루쉰 받들어 올리기와 내려 파기 루쉰(魯迅) 중국인들은 자기를 불안하게 할 조짐이 보이는 인물을 만나면, 자고로 두 가지 수법을 써왔다. 하나는 내리누르는 것이고 하나는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내리누르는 데는 낡은 습관이나 도덕을 이용하거나, 관의 힘을 빈다. 그 때문에 민중을 위해 분투하는 고독.. 산문 - 필사 + 2010.08.05
칠십 리 눈길을 걷고 / 이덕무 칠십 리 눈길을 걷고 이덕무 때는 계미년(1763) 늦겨울 12월22일이다. 나는 누런 말에 걸터앉아 충주로 가기 위해 아침녘에 이부利富고개를 넘었다. 얼어붙은 구름이 하늘을 꽉 메우더니 눈이 펄펄 날리기 시작하였다. 가로 누워 날리는 눈발은, 마치 베틀 위에 씨줄이 오가는 듯, 어여쁜 눈송이가 귀밑터.. 산문 - 필사 + 2010.08.01
통곡할 만한 자리 / 박지원 통곡할 만한 자리 - 박지원 초파일 갑신(甲申), 맑다. 정사 박명원과 같은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 남짓 가서 한 줄기 산기슭을 돌아 나서니 태복(泰卜)이 국궁(鞠躬, 존경의 뜻으로 몸을 굽힘)을 하고 말 앞으로 달려나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큰 소.. 산문 - 필사 + 2010.07.04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 / 전혜린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 - 전혜린 사랑만이 우리를 온갖 악에서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요새다. 많은 사랑을 적당한 방법으로 받고 자라난 사람만이 정상적인 정서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의 부드러운 풍요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생래의 두 가지 본능이 있.. 산문 - 필사 + 2010.06.23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휴대폰 사용자들을 조롱하는 것은 당신 자유이다. 그러나 그 조롱이 정당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다음 다섯 가지 부류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첫째 부류는 장애자들이다. 이들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 하더라도 의사나 응급 구조대와 언제라도 연락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휴대폰이라는 구원의 도구를 그들에게 제공한 과학 기술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두 번째로는 직업상의 막중한 책무 때문에 어떠한 긴급 사태에도 즉각 대응해야 하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소방서장, 시골 의사. 갓 죽은 사람의 장기를 기다리는 이식 전문의 등). 이들에게 휴대폰은 싫어도 지니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이다. 세 번째 부류는 내연內緣의 커풀이다. 이들에.. 산문 - 필사 + 2010.06.23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 정약용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 정약용 위 아래로 5,000년이나 되는 시간 속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가로세로 3만 리나 되는 넓은 땅 위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나라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 산문 - 필사 + 2010.02.10
부엌궁둥이에 등을 기대고 / 목성균 부엌궁둥이에 등을 기대고 목성균 고향의 초가삼간은 동향집이었다. 망종亡種 무렵, 앞산 유지붕 위로 해가 떠오르면 동향집은 해일海溢같이 쏟아지는 햇살에 어뢰를 맞은 함정처럼 여지없이 침몰했다. 떠오르기 전에 아버지는 침몰하는 함정의 함장처럼 결연하게, "어서 들로 가자!" 하시고 소를 몰.. 산문 - 필사 + 2010.01.27
안경 / 김용준 안경 김용준 독서를 하려면 단 5분이 못 되어 눈이 피로해진다. 이것은 반드시 무슨 고장이 있는 것이리라 하여 A병원에 검안을 갔더니 간호부가 무슨 약으로 했는지 올빼미처럼 동공을 키워 나서 4,5일 동안이나 글 한 자 볼 수 없다. 글을 안 보고 사는 것쯤은 누워 떡 먹기보다 더 쉬우리라 했더니 막.. 산문 - 필사 + 2010.01.25
매화 / 김용준 매화 -김용준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디다. 그 수묵 빛깔로 퇴색해 버린 장지 도배에 스며드는 묵흔처럼 어렴풋이 한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완자창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 산문 - 필사 + 2010.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