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안경 / 김용준

칠부능선 2010. 1. 25. 15:27


    안경

     김용준


  독서를 하려면 단 5분이 못 되어 눈이 피로해진다. 이것은 반드시 무슨 고장이 있는 것이리라 하여 A병원에 검안을 갔더니 간호부가 무슨 약으로 했는지 올빼미처럼 동공을 키워 나서 4,5일 동안이나 글 한 자 볼 수 없다.

  글을 안 보고 사는 것쯤은 누워 떡 먹기보다 더 쉬우리라 했더니 막상 딱 당해 놓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전차를 타고 전차표를 받아 들고 동소문이 바로 찍혔나 하고 살피려면 글자는 몽롱한 꿈속과 같이 흐릿하다.

  의사의 말에 의하여 약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독서를 금할 것은 물론이겠지만 자기 손을 보아도 흐릿하고 멀찍이 서 있으면 보이는 식구들의 얼굴이 가까이 온즉 그만 흐리멍덩해지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앞 못 보는 장님은 어찌하여 사는가!

  내 눈이 안 보일 때 비로소 앞 못 보는 불쌍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난다.

  검안을 한 결과는 가벼운 난시였고 그 후 며칠을 지나 눈에 맞는다는 안경을 맞추어 썼다.

  그러나 맞는다는 안경은 쓰는 그 순간부터 부자연하기 짝이 없다. 눈 앞에 보이는 온갖 것이 바로 뵈기는커녕 어룽거리기만 한다.

  의사에게 이 안경이 내 눈에는 맞지 않는 것이라 했더니 처음은 누구나 다 그러하니 한 십여 일 그대로 쓰고 견디어 보라 한다. (아무리 안 맞는 안경이라도 오래 써서 맞아질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닌가)

  그 후 십여 일도 훨씬 지난 오늘에 와서는 과연 의사의 말대로 어룽거려 보이는 증세는 없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썼던 안경을 벗는 날이면 온갖 것이 어룽거려 견딜 수 없다.

  자아 이러고 보면 나는 안경으로 하여 이利를 본 셈인가 해를 입은 셈인가? 생때같던 눈이 안경을 따라 나빠진 것인지 안경이 비뚤어진 내 눈알을 바로잡아 놓은 것인지 의사는 물론 안경의 정확성을 고집하겠지만 나는 확실히 안경이 내 눈을 잡아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어느 편이 나빠졌든 세상은 그저 속아서 사는 곳인가 보다. 길이 들면 그대로 살란 법인가 보다.

  만첩청산萬疊靑山을 울을 삼고 번개같이 뛰놀던 맹수라도 동물원 철책 속에 들어가는 날이면 그놈도 하릴없이 길이 든다.

  뒤통수에 눈알이 하나만 더 있었다면 인생은 얼마나 더 행복하리요마는 마땅히 있어야 할 그곳에 눈이 없어도 사람이란 그대로 살아가는 법이요 색맹이 붉고 푸른 빛을 구별할 줄 모르면서도 조그마한 부자유도 없이 살아가는 걸 보면 사람이란 결국 자기 안에 한 세계를 만들고 그것으로 자족하는 본성이 있는가 보다.

  그러고 보면 장님이라고 구태여 못 살란 법도 없을 것이다. 눈이 안 보이는 가운데서 따로이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만족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의사가 동공을 키워 놓은 대로 그놈의 약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처음은 갑갑할 것이나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에 차츰 길이 들어서 나중에는 그 속에서 도리어 만족을 얻을 길이 열릴는지도 모른다.

 <<근원수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