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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 정약용

칠부능선 2010. 2. 10. 20:31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 정약용


위 아래로 5,000년이나 되는 시간 속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가로세로 3만 리나 되는 넓은 땅 위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나라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나이로 보면 젊음과 늙음의 차이가 있는데다가, 그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이면, 서로 만난다 해도 정중하게 예의를 차려야 하니, 만나는 즐거움이 적을 것이다. 게다가 죽을 때까지 서로 알지 못한 채 살다가 마는 경우는 또 얼마나 더 많겠는가.

더구나 이 몇 가지 경우 외에도, 또 출세한 사람과 그렇지 못함에 있어서 차이가 나고, 취미나 뜻하는 바가 서로 다르면, 비록 동갑내기이고 사는 곳이 가까운 이웃이라고 해도, 서로 더불어 사귀거나 잔치를 해가며 재미있게 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들이 모두 인생에서 친구로 사귀어 어울리는 범위가 좁아지는 까닭인데, 우리나라는 그 경우가 더 심하다 하겠다.

내가 일찍이 이숙(邇叔) 채홍원(蔡弘遠)과 더불어 시 모임을 결성하여 함께 어울려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자고 의논한 일이 있었다. 이숙이 “나와 그대는 동갑이니, 우리보다 아홉 살 많은 사람과 아홉 살 적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와 그대가 모두 동의하는 사람을 골라 동인으로 삼도록 하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아홉 살 많은 사람과 아홉 살 적은 사람이 서로 만나게 되면 열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므로 허리를 굽혀 절을 해야 하고 또 앉아 있다가도 나이 많은 이가 들어오면 일어나야 하니, 너무 번거롭게 된다. 그래서 우리보다 네 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우리보다 네 살 적은 사람에서 끊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모두 열다섯 사람을 골라냈는데, 이유수, 홍시재, 이석하, 이치훈, 이주석, 한치응, 유명원, 심규로, 윤지눌, 신성모, 한백원, 이중련과 우리 형제 정약전과 약용 및 채홍원이 바로 그 동인들이다.

이 열다섯 사람은 서로 비슷한 아니 또래로, 서로 가까운 거리에 살며, 태평한 시대에 벼슬하여 그 이름이 가지런히 신적(臣籍나)에 올라 있고, 그 뜻하는 바나 취미가 서로 비슷한 무리들이다. 그러니 모임을 만들어 즐겁게 지내며 태평한 시대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모임이 이루어지자 서로 약속하기를,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서늘한 초가을 서지(西池)에 연꽃이 구경할 만하면 한 번 모이고,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이 되어 큰 눈 내리는 날 한 번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이기로 한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해서 술을 마셔가며 시가를 읊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이 어린 사람부터 먼저 모임을 주선토록 하여 차례대로 나이 많은 사람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시작하여 반복하게 한다. 정기 모임 외에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으면 한턱 내고, 고을살이를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한턱 내고, 승진한 사람도 한턱 내고, 자제가 과거에 합격한 사람도 한턱 내도록 한다”라고 규정했다. 이에 이름과 규약을 기록하고 그 제목을 붙이기를 <죽란시사첩(竹欄詩社帖)>이라 했다. 그리한 것은 그 모임이 대부분 우리집인 죽란사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번옹(樊翁)께서 이 일에 대하여 들으시고는 탄식하며. “훌륭하구나! 이 모임이여. 나는 젊었을 때 어찌하여 이런 모임을 만들지 못했던고? 이야말로 모두가 우리 성상께서 20년 내내 백성들을 훌륭하게 길러내고, 인재를 양성해 내신 결과로다. 한 번 모일 때마다 임금님의 은택을 노래하고 읊조리면서, 그 은혜에 보답할 길을 생각해야 할 것이요. 부질없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나 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숙이 나에게 서문을 쓰라고 부탁하기에 번옹이 경계해 주신 말씀을 함께 적어서 서문으로 삼는다.


* 번옹-채홍원의 아버지 채제공의 호가 번암(樊巖)이므로 번옹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