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매화 / 김용준

칠부능선 2010. 1. 25. 00:34


 

매화

 -김용준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디다. 그 수묵 빛깔로 퇴색해 버린 장지 도배에 스며드는 묵흔처럼 어렴풋이 한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완자창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

  실례의 말씀이오나 ‘하도 오래간만에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청하신 선생의 말씀에 서슴지 않고 응한 것도 실은 선생을 대한다는 기쁨보다는 댁에 매화가 만발하다는 소식을 들은 때문입니다. 십 리나 되는 비탈길을 얼음 빙판에 코방아를 찧어 가면서 그 초라한 선생의 서재를 황혼녘에 찾아간 이유도 댁의 매화를 달과 함께 보려 함이었습니다.

  매화에 달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만 흔히 세상에서 매화를 말할 때 으레 암향暗香과 달리 황혼을 들더군요.

  선생의 서재를 황혼에 달과 함께 찾은 나도 속물이거니와, 너무나 유명한 임포林捕의 시가 때로는 매화를 좀 더 신선하게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방해물이 되기도 하는 것입디다.

  화초를 완상하는 데도 매너리즘이 필요한 까닭이 있나요.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자못 성관盛觀으로 피어 있는 그 앞에 토끼처럼 경이의 눈으로 쪼그리고 앉은 나에게 두보의 시구나 혹은 화정和靖의 고사가 매화의 품위를 좌우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하고많은 화초 중에 하필 매화만이 좋으란 법이 어디 있나요. 정이 든다는 데는 아무런 조건이 필요하지 않는가 봅디다.

  계모 밑에 자란 자식은 배불리 먹어도 살이 찌는 법이 없고, 남자가 심은 난초는 자라기는 하되 꽃다움이 없다는군요.

  대개 정이 통하지 않은 까닭이라 합니다.

  그 동안 나는 많은 화초를 심었습니다. 봄에 진달래와 철쭉을 길렀고, 여름에 월계와 목련과 핏빛처럼 곱게 치는 달리아며, 가을엔 울 밑에 국화도 심어 보았고, 겨울이면 내 책상머리에 물결 같은 난초와 색시 같은 수선이며, 단아한 선비처럼 매화분을 놓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철 따라 어느 꽃 어느 풀이 아름답고 곱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마는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내 머리에서 모든 꽃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내 기억에서 종시 자라지 않는 꽃 매화만이 유령처럼 내 신변을 휩싸고 떠날 줄을 모르는구려.

  매화의 아름다움이 어디 있느냐구요?

  세인이 말하기를 매화는 늙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늙은 등걸이 용의 몸뚱어리처럼 뒤틀려 올라간 곳에 성긴 가지가 군데군데 뻗고 그 위에 띄엄띄엄 몇 개씩 꽃이 피는 데 품위가 있다고 합니다.

  매화는 어느 꽃보다 유덕한 그 암향이 좋다 합니다.

  백화白花가 없는 빙설 속에서 홀로 소리쳐 피는 꽃이 매화밖에 어디 있느냐 합니다.

  혹은 이러한 조건들이 매화를 아름답게 꾸미는 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매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실로 이러한 많은 조건이 필요 없는 곳에 있습니다.

  그를 대하매 아무런 조건 없이 내 마음이 황홀해지는 데야 어찌하리까.

  매화는 그 둥치를 꾸미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자라고 싶은 대로 우뚝 뻗어서 피고 싶은 대로 피어 오르는 꽃들이 가다가 훌쩍 향기를 보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제가 방 한구석에 있는 체도 않고 은사隱士처럼 겸허하게 앉아 있는 품이 듯합니다.

  나는 구름같이 핀 매화 앞에 단정히 앉아 행여나 풍겨오는 암향이 다칠세라 호흡도 가다듬어 쉬면서 격동하는 심장을 가라앉히기에 힘을 씁니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나에게 곧 무슨 이야긴지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매화를 대할 때의 이 경건해지는 마음이 위대한 예술을 감상할 때의 심경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내 눈앞에 한 개의 대리석상이 떠오릅니다. 희랍에서도 유명한 피디어스의 작품인가 봅니다.

  다음에 운강雲岡과 용문龍門의 거대한 석불들이 아름다운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서 내 눈앞에 황홀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잠시후 여러 환영들은 사라지고 신라의 석불이 그 부드러운 곡선을 공중에 그리며 아무런 조건도 없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세로 내 눈을 어지럽고 황홀하게 합니다.

  그러다 나는 다시 희멀건 조선조의 백사기白沙器를 봅니다. 희미한 보름달처럼 아름답게 조금도 그의 존재를 자랑함이 없이 의젓이 제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 수줍어하는 폼이 소리쳐 불러도 대답할 줄 모를 것 같구려. 고동古銅의 빛이 제아무리 곱다한들 용천요龍泉窯의 품이 제아무리 높다한들 이렇게도 적막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핀 그 앞에서 나의 환상은 한없이 전개됩니다. 그러다 다음 순간 나는 매화와 석불과 백사기의 존재를 모조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잔잔한 물결처럼 내 마음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있는 듯 만 듯한 향기가 내 코를 스치는구려. 내 옆에 선생이 막 책장을 넘기시는 줄 어찌 알았으리요.

  요즈음은 턱없이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나 남 할 것 없이 몸보다는 마음이 더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바로 며칠 전이었던가요. 어느 친구를 만났을 때 내가 “X선생 댁에 매화가 피었다니 구경이나 갈까?” 하였더니 내 말이 맺기도 전에 그는 “자네도 꽤 한가로운 사람일세.”하고 조소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다지도 바빠졌는가. 물에 빠져 금시에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 친구 인사라도 한 자였다면 건져 주었을 걸’하는 영국풍의 침착성은 못 가졌다 치더라도, 이 커피는 맛이 좋으니 언짢으니 하는 터에 빙설을 누경屢經하여 지루하게 피어난 애련한 매화를 완상할 여유조차 없는 이다지도 냉회冷灰같이 식어 버린 우리네 마음이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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