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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할 만한 자리 / 박지원

칠부능선 2010. 7. 4. 10:18

통곡할 만한 자리  

- 박지원 



 초파일 갑신(甲申), 맑다.


정사 박명원과 같은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 남짓 가서 한 줄기 산기슭을 돌아 나서니 태복(泰卜)이 국궁(鞠躬, 존경의 뜻으로 몸을 굽힘)을 하고 말 앞으로 달려나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큰 소리로,


"백탑(白塔, 중국 요동 요양성에 있는 탑)이 현신(現身, 지체 낮은 이가 지체 높은 이를 처음 뵘을 이르는 말)함을 아뢰오."


한다. 


태복이란 자는 정 진사의 말을 맡은 하인이다. 산기슭이 아직도 가리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오르락내리락하여 현란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자연의 광활함과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왜소한 인간 존재에 대해 인식하게 됨)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


정 진사가,


"이 천지간에 이런 넓은 안계(眼界, 눈에 보이는 한의 범위)를 만나 홀연 울고 싶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하기에 나는,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천고의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만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그저 옷깃을 적셨을 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 나온 듯하여 천지에 가득 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진 못했소이다.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 중에서 '슬픈 감정(哀)'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를 겝니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미움이 극에 달하여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치면 울게 되니,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 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소이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벽력에 비할 수 있는 게요. 복받쳐 나오는 감정이 이치에 맞아 터지는 것이 웃음과 뭐 다르리요?


사람들의 보통 감정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지도 못한 채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 '슬픈 감정'에다 울음을 짜 맞춘 것이오. 이러므로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를 때 이내 억지로라도 '아이고', '어이'라고 부르짖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하고 참다운 소리는 참고 억눌리어 천지 사이에 쌓이고 맺혀서 감히 터져나올 수 없소이다. 저 한나라의 가의(賈誼, 가의는 직간을 하다가 귀양가게 되었으나,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여 유명한 상소문을 올린 바 있다. 그 상소문에 천하사세를 위해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 크게 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라 하여 조목조목 내용을 서술했다)는 자기의 울음터를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하여 필경은 선실(宣室, 한문제가 거처하던 미앙궁의 궁실로 여기서는 한나라 정권을 말함)을 향하여 한번 큰 소리로 울부짖었으니, 어찌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오."  


"그래, 지금 울 만한 자리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당신을 따라 한 바탕 통곡을 할 터인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을 골라 울어야 하겠소?"


"갓난아이에게 물어 보게나. 아이가 처음 배 밖으로 나오며 느끼는 '정'이란 무엇이오? 처음에는 광명을 볼 것이요, 다음에는 부모 친척들이 눈앞에 가득히 차 있음을 보리니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이 같은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없을 일인데 슬프고 성이 날 까닭이 있으랴? 그 '정'인즉 응당 즐겁고 웃을 정이련만 도리어 분하고 서러운 생각에 복받쳐서 하염없이 울부짖는다. 혹 누가 말하기를 인생은 잘나나 못나나 죽기는 일반이요, 그 중간에 허물 · 환란 · 근심 · 걱정을 백방으로 겪을 터이니 갓난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제 조문(弔問)을 제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결코 갓난아이의 본정이 아닐 겝니다. 아이가 어미 태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는 어둡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비좁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 나오자 팔을 펴고 다리를 뻗어 정신이 시원하게 될 터이니, 어찌 한번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 보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하리이다.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를 굽어보는 곳에 한 바탕 통곡할 '자리'를 잡을 것이요, 황해도 장연의 금사 바닷가에 가면 한 바탕 통곡할 '자리'를 얻으리니, 오늘 요동 벌판에 이르러 이로부터 산해관 일천이백 리까지의 어간은 사방에 도무지 한 점 산을 볼 수 없고 하늘가와 땅끝이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고 간 비바람만이 이 속에서 창망할 뿐이니, 이 역시 한번 통곡할 만한 '자리'가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