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599

추억을 믿지 않는다

"사랑은 약속이다. 믿음과 신뢰의 약속, 행복을 주겠다는 약속,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다. 약속은 지키는 것이다. 지키라는 강요가 아니다.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고해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사랑의 약속은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줄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 이런 도사 같은 말들 때문에 더 우울하다. 추억이란 현재진행형이 불가능할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불러들이는 씁쓸한 일인극이 아닌가. Sirenia - In Sumerian Haze 우울 - 보들레르 내겐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 계산서들, 시 원고와 연애편지, 소송 서류, 연가들, 영수증에 돌돌 말린 무거운 머리타..

놀자, 책이랑 2007.08.24

간구를 위한 시간

오늘, 간절하게 빌어야 할 일이 있다. 마지막 햇살을 지금 모두 내려주세요. 마지막 용서를 쏟아 부어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실은 이 말을 할 수 없어 진정한 참회의 기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냥 주시는대로 받겠습니다. 오늘도 어쩔수없이 정직한 바람밖에는.. 내 행실만큼, 주시는 것에 감사하리라는 것을.. 아시죠. 미안하다 아들아, 이런 엉터리같은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엄마를... 차라리 네가 봐주렴. 네가 흘린 땀과 열정에, 거기다 조금의 행운까지 더해 ... 실한 결과를 빈다. Egon Schiele Hu & The Hilltops - Cry Me A River

놀자, 책이랑 2007.08.12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 / 마종기

音 : Kheops...After The War 한 처음에,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이 있었다.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천문학회에서는 캘리포니아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과 애리조나 대학의 천문학 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설파했다. 천만 광년이나 천억 광연 전에 태양계는 물론, 우주계는 물론, 그 이상의 전테의 한 처음에,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이 있었다. 나는 예과 시절에 식물학을 좋아했다.크고 작은 꽃과 나무와 풀잎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었고,식물 채집과 표본은 언제나 학년에서 으뜸이었고 위안이었다.30년이 더 지난 요즈음, 나는 그 풀잎이나 꽃의 이름을거의 다 잊고 말았다.멀리 살고 있는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많이 기억해낼 수가 없다.내 이름도 달라져버렸다.아무도 내 이름을 어릴적 친구들같이 불러주지 않았다..

놀자, 책이랑 2007.08.03

'글쓰기 충고'

* 세뇌가 필요해 조선시대에도 지금도, 좋은 글은 쉬워야 한다 조선 시대 지식인들은 어떤 글을 좋은 글로 생각했을까? 최근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포럼)를 펴낸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대표 한정주씨는 “조선 시대 지식인이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도 지금과 비슷하다”며 “그들의 충고는 지금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이수광, 이익, 허균 등 당대를 풍미했던 지성인들이 제시하는 ‘글쓰기 충고’를 들어보자. 간략하고 쉽게 글을 써야 400년 전에도 글쓰기의 미덕은 간략하고 쉽게 글을 쓰는 것이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어렵고 교묘한 말로 글을 꾸미는 건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닌 문장의 재앙(災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글이란 ..

놀자, 책이랑 2007.07.17

그 맑은 모습

*유경환 선생님이 떠나셨다. 71세로.... 그 수줍은 듯 맑은 얼굴을 다시 뵐 수 없음이 안타깝다. 선생님 영원안식에 들으셨으리. 산노을 테너 신영조 /시 유경환,/ 작곡 박판길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너머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이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 듯한 마음 아아, 산울림이 내 마음 울리네 다가오던 봉우리 물러서고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나무에 가만히 기대보면 누군가 숨었네 언젠가 꿈속에 와서 내 마음에 던져진 그림잔가 돌아서며 수줍게 눈감고 가지에 숨어버린 모습 아아, 산울림이 그 모습 더듬네 다가서던 그리움 바람되어 긴 가지만 어둠에 흔들리네

놀자, 책이랑 2007.07.06

포정을 우러르다

'빼어난 수필가는 장자(莊子)의 에 나오는 포정 같은 장인(匠人)을 그 이상으로 삼는다. "솜씨 좋은 소잡이가 일 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이죠. 보통의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니 그러합니다. 하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들을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넓어서 칼날이 움직이는 데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19년이 되었어도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죠.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킨 곳에 이를 때면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두려움을 지닌 채 경계를 하고 눈길을 거기 모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백정인 포정이 임금인..

놀자, 책이랑 2007.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