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포정을 우러르다

칠부능선 2007. 6. 23. 22:57
 

'빼어난 수필가는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에 나오는 포정 같은

장인(匠人)을 그 이상으로 삼는다.


  "솜씨 좋은 소잡이가 일 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이죠.

보통의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니 그러합니다.

하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들을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넓어서 칼날이 움직이는 데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19년이 되었어도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죠.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킨 곳에 이를 때면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두려움을 지닌 채 경계를 하고 눈길을 거기 모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백정인 포정이 임금인 문혜군(文惠君)에게 위처럼 자신의 칼질을 당당하게 말한다.

그 문혜군이 포정의 칼 재주에 경탄하니까

포정은 정색을 하고 "제가 반기는 것은 도(道) 입니다.

손 끝의 재주 따위보다야 우월한 것입니다"고 임금에게 면박을 준다.


  진정한 문인이라면 포정의 칼질하는 정신으로 언어를 맞이해야 한다.

특히 언어를 무한히 섬세하면서 장엄하고

가파르면서도 유정하게 피어 올려야 하는 에세이는 수필가에게 포정의 칼날 같은

언어의 감각을 요구한다.'

 

- 윤재근의 <에세이 그리고 다양한 변용> 중에서

 

  

* 아,

   지엄한 수필의 세계. 더욱 멀게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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