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칼 같은 글쓰기 / 아니 에르노

칠부능선 2023. 1. 8. 17:45

아니 에르노의 소설과 달리 단숨에 읽혀지지가 않았다.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 이메일로 주고받은 글쓰는 방식과 상황에 대해 나눈 이야기다.

경험한 것만을 쓰겠다는 에르노는 소설을 쓰면서 다른 일기를 동시에 쓴다고 한다. 경험을 모두 쓴다지만 말할 수 있는 것과 혼잣말로 두는 것이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내겐 글을 쓰면서 따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나의 첫 글쓰기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문학적으로 지향하는 바 없이 그저 내밀한 생각을 털어놓은, 말하자면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글쓰기였어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내면일기를 쓰기 시작했지요. 몸시 우울한 어느 저녁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을 글쓰기에 바치리라고는 특별히 예측한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쓰기' 위해 열중했던 게 기억나는 군요. 하지만 직설적인 성향이 아주 빨리 그 욕심을 꺾어버렸어요. (29쪽)

* 내가 사용하는 글쓰기 방식을 당신은 '임상적'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 방식이 내 연구의 핵심 부분입니다.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껴지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 (47쪽)

* 장 주네는 "죄책감은 글?쓰기를 추동하는 막강한 동력이다"와 같은 문장을 썼습니다. ... 나는 이 죄책감이 결정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글쓰기의 바탕에 죄책감이 있다면, 나를 죄책감에서 가장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글쓰기라고 믿습니다. ... 출신 계급을 변절한 처지에서, 정치적 행위로서 그리고 '헌납'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로 글쓰기라고 믿습니다. (82쪽)

*내게 글쓰기란 철저하게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삶의 즐거움보다 우월한 어떤 즐거움을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아름답고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곧 '멀리' 있는 것, 바로 나 자신의 것이었던 그 현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과 동일시되었죠. (98쪽)

* '여성적 글쓰기'나 여성들의 글쓰기가 가지고 잇는 대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문학에 접근하는 현상에 대한 남성들의 무의식적 전략이자 그 동안 있어온 수많은 전략의 연장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여성적'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지 않는 그 자체로서의 '문학'을 장악함으로써 여성들을 배제시키려는 것이죠. (137쪽)

* 프루스트는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해명된' 삶, 따라서 실제로 체험된 유일하게 진정한 삶, 그것은 문학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난 "발견되고 해명된 삶" 이 말을 강조하고 싶어요. 내 느낌에 이 말이 핵심인 것 같아요. 혹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의 할 수 있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어요. 말, 여행, 광경 등을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또는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글쓰기가 무엇을 다가오게 하고 도래하게 하는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글쓰기에는 공포 또한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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