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 선생이 '리뷰 에세이'를 냈다.
책을 읽고 쓴 리뷰와 수필의 차이을 생각해 본다. 모든 글이 읽은 책을 영양으로 싹이 튼다. 그것을 전면에 배치하느냐 바닥에 장착하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드러냄과 감춤을 적절히 해야 가독력이 높다. 책이 책을 부르는데 성공했다.
내가 읽은 책 보다 읽지 못한 책이 더 많다. 그럼에도 거의 아는 작가라서 가깝게 다가온다. 충분히 불씨를 당겼다.
삶과 버무린 '리뷰 에세이' <말 이상의 말 글 이상의 글>이 오래 새겨지길 바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읽고 쓰면서 점점 '내'가 되어갈 것이다. 이번 '리뷰 에세이'가 독자들의 가슴에도 문학의 불씨를 댕겨 책 권하는 도화선이 되길 희망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수주의 글에서는 술꾼의 멋과 품격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대취 후 나신으로 소 등을 타고 음주운전을 한 그 시대는 문인의 풍류가 허용되었다. 이러한 명정이야말로 문인의 낭만이며 문학의 연장선이라고 치올리기도 했다. 만약 오늘날 문인이 술바람에 옷을 벗고 소를 탄다면 어찌 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신문 가십 거리가 되며 탈선 주벽으로 낙인찍힐 것이 틀림없다. (94쪽)
* 거울은 현실이지만 동시에 가상공간과도 연결되어 있으므로 헤테로토피아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이를 문학에 적용시킨다면 현실의 재현인 문학 작품이 유토피아라면 실제로 읽고 쓰는 장소인 작가의 방은 헤테로토피아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문학이라는 거울 앞에서 작가는 얼마나 겸손해야 할 것인가.
몸이 헤테로토피아로 가능하다는 푸코의 이론도 흥미롭다. 우리는 눈이라는 두 개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내다본다. 그러므로 몸이라는 공간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에 있으며 몸을 거치지 않고서는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없다. (141쪽)
* 돈키호테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무엇인가. 풍차 거인이나 사자 무리처럼 강력한 적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고향 친구가 가장한 '하얀 달의 기사'와의 싸움에서 패함으로써 그는 꿈을 접고 귀향의 약속을 이행하게 된다. 진정한 기사는 약속도 충실히 지켜야 했으므로 ,집으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열병을 얻고 불면의 밤을 보내다 우울증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만다. '미쳐서 살고, 정신 차려 죽는다' 라는 그의 묘비명 글귀를 읽다 보면 가장 웃긴 희극이 가장 슬픈 비극임을 절감케 된다. (180쪽)
* 작가는 상식을 뒤엎어야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자신이 쌓아놓은 벽이 견고할수록 문장의 화살은 부딪히고 꺾여 생살을 찢는다. 그러나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다독거려서 무화시키면 결국 동일시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 속에 들어온 침향이 번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이 될 수도 있으며 알곡의 글로 남게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유병근) 또한 표피적인 글쓰기는 거부하였다. (185쪽)
* 그가 부르짖은 '자유'는 내게 있어 '치유'였다. 아픈 생을 이겨내게 했으니까, 그리하여 절망마저 그리움으로 녹여준 단어니까. 내가 더 큰 세상을 향할 수 있도록 꿈의 씨앗을 여물게 했으므로. 비로소 깨닫는다. 자유란 모들 것을 잃고서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지금도 나는 크레타섬으로 향하는 끈을 당기고 있다. (199쪽)
멀지 않은 시간에 김정화 선생이 크레타 섬에 당도하길 ..
카잔차키스의 무덤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엉성한 나무 싶자가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기기를,
대절 택시를 타고 그가 살던 집을 향하는 길에서 자유의 바람을 만끽하며 외길 산길을 돌아올라
카잔차키스 박물관에서 그의 장례식 모습과 촘촘히 쌓여있는 흔적을 매만져보게 되기를 바란다.
행사장에서 잠깐 얼굴을 본 김정화 선생은 수필에 열성을 다하는 어여쁜 사람이다. 박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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