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익숙하다. 먼저 읽은 두 권과 같은 장소에서 그의 아버지가 중심인 이야기다.
딸이 나보다 나은 환경, 나보다 나은 위치에서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어디서나 같다.
경험한 것, 사실만을 쓴다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고 보니, 나를 소재로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수필 작법에도 통하는 구절들을 만난다.
* 나는 천천히 쓰고 있다. 사실과 선택의 집합에서 한 인생을 잘 나타내는 실타래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면서, 조금씩 아버지만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글의 초안이 온통 자리를 차지하고, 생각이 혼자 뛰어다닌다. 반대로 기억의 장면들이 슬며시 미끄러져 들어오게 두면, 아버지의 있는 모습 그대로 가 보인다. ...
물론 들었던 단어와 문장에 최대한 가깝게 써야하는 이런 작업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40쪽)
*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 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 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 ('우리집은 잘 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했으니까.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보다도 이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다. (48쪽)
*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 내며 말하는 법 말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몰랐다. 예의 바른 말투는 낯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습관이 너무 몸에 배서 사람들과 함게 있을 때는 올바르게 말하려고 애쓰다가, 내가 자갈 더미에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것을 막기 위해 거친 톤과 그의 노르망디 억양 그리고 욕설을 되찾았으며 좋은 인상을 주길 원했던 시도를 망쳐버렸다. 그는 우아하게 나를 혼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나 또한 따귀를 때리겠다는 협박을 점잖은 말로 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65쪽)
* 수술 후, 그는 가능한 한 짧게 병원에 머물렀고 집에서 느리게 회복했다. 그는 기력을 잃었다. 상처가 찢어질까 봐 더는 음료수를 담은 상자를 들지 못했고, 몇 시간 연달아서 정원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 후로 어머니가 가게 지하실로 뛰어 내려가고 배달 온 상자들과 감자 자루를 들고 두 배로 일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는 쉰아홉에 자신감을 읺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야"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마도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80쪽)
* 12시 반, 나는 아이를 재웠다. 아이는 잠들지 못하고 스프링 침대 위에서 있는 힘껏 뛰었다. 아버지는 힘겹게 숨을 쉬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 어머니가 위층에서 천천히 걷다가 내려오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평소와는 다른 그 느린 걸음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마시러 내려온 줄 알았다. 어머니는 계단을 돌자마자 조용히 말했다. "다 끝났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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