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파키스탄 히말라야 / 거칠부

칠부능선 2023. 1. 23. 23:47

 

거칠부의 거침없는 걸음을 눈길로 따라가며, 내 마음이 아직도 여전히 설레는 게 대견하다.

과장없는 담담한 토로가 마음에 든다. 

 

 

 

* 라인홀드는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눈사태로 동생을 잃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검은 고독 흰 고독》은 8년 만에 다시 낭가파르바트를 등반하는 동안 겪었던 내면의 갈들과 불안, 고독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동생 권터와의 이별과 단독 등반의 불안을 검은 고독으로, 불안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워졌을 때를 흰 고독이라 표현한다. 루팔벽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한 고독한 등반가의 독백이 들리는 듯했다.

" 나는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럴 때면 지난 일도 다가올 일도 모두 내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나는 어떤 일이건 그것이 나에게 전부일 때 행동한다. 내가 하는 일의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

- 라인홀드 메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 (88쪽)

* 오지 여행에서 고수를 알아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얼마나 현지에 잘 적응하는지, 얼마나 불편함을 잘 참는지를 보면 된다.

여행에서 인내심은 곧 인성이다. 잘 참는 자가 진정한 고수다. 안타깝게도 어린 나의 영혼은 상황에 곧장 적응하면서도 몇 가지에 관해서는 완벽하게 참아내지 못했다. (122쪽)

* 무거운 짐을 지고 비탈을 내려오는 포터들이 불안했다. 한 포터가 다시 올라가더니 할아버지 포터의 짐을 대신 지고 내려왔다. 그 모습을 감명 깊게 지켜보았다. 파키스탄 북부는 풍경만 멋진 게 아니라 사람도 멋졌다. (143쪽 )

*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 언저리에는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한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보다 조금 더 잘 살기는 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불쌍하거나 불행한 건 아니다. 우리가 이곳에 동정을 베풀기 위해 온 건 더더욱 아니다.

(149쪽)

* 흔히 여행을 좀 한다는 사람을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제는 의심한다. 나를 포함해서 내가 만난 어느 누구도 영혼이 자유롭지 못했다. 설사 자유의 옷을 입고 있다 한들, 몸이 자유로울 뿐 영혼엔 걸림이 많았다. 먹는 것도 사람도 좋고 싫음도 모두 타인에게 의지하며 '취향'이란 이름으로 걸림을 합리화했다. 여행자란 신분의 욕망을 가득 채우고, 자유란 이름의 번지르르한 포장을 둘렀다.

(228쪽)

* 이틀에 걸쳐 내려가는 길은 올라갈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산하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20~30년 젊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내 나이가 60살이 넘으면 고산 트레킹은 할 수 없을 거라고 미리 선을 그어 두었다. 그런데 9명 중 7명이 60~ 70대였다. 그들 모두 잘 걷거나 꾸준히 걸을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그 나이에 그들처럼 걸을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지만 내가 걱정했던 늙음이 생각보다 희망적이어서 위안이 되었다. (270쪽)

* 고산에서는 걷는 것만으로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도 N님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즐겼다. 나는 어떤 여행에서도 그녀처럼 활력이 넘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스태프들에게 친절하고 잘 베풀면서도 선을 넘지 않았다. 그녀에겐 늘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 걷지 않는데도 가장 잘 걸었다. (312쪽)

* 칸데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짐만 내려놓고 다른 차로 옮겨 탔다. 이브라힘의 집에 가지 위해서다. 후세 입구에 있는 그의 집에 도착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녀석들은 아빠에게 안기고 매달려 떨어질 줄 몰랐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온몸으로 표현했다. 이브라힘이 집을 떠난 지 40일이나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344쪽)

* 지금 당장의 거친 계획이 나중에 하는 완벽한 계획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358쪽)

* 미련 없이 다녀봐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원 없이 걷고, 원 없이 여행하다 보면 간절함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내가 향하는 곳은 여전히 히말라야가 될 것이다.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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