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간 / 박경리

수업을 위해 예전 책들을 들춰 읽었다.

이 새로움은 뭔가. 읽은 흔적이 있는데도 새 롭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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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는 김동리 선생을 만나 습작품을 보이니 "소설을 계속 써보라" 는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박경리는 대하소설 집필중에도 남몰래 시를 쓰며 위로 받았다고 한다.

26년 동안 《토지》 20권을 썼다. (1969년 9월~ 1994년 8월)

1971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수술 자리를 붕대로 동여맨 채로 토지 집필을 이어갔다.

이때의 심정을 시 <그 해 여름 1.2.3>에 풀어놓았다.

곧은 마음과 높은 정신, 깊은 사색, 통찰로 세상을 아우른다. 이 시집은 유고시를 제외한 박경리 시집을 망라했다.

두 편의 작가 서문을 읽은 것으로 시작부터 마음이 무지근해진다.

박경리, 고유명사가 된 박경리 선생님은 우러를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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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序

견디기 어려울 때 詩는 위안이었다. 8.15해방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문학에 뜻을 둔 것도 아닌 평범한 여자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여 살아남았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생각해 보면 20년 가까이 한 작품에 매달려 오늘 이 지점에까지 왔는데, 20년 가까이 세월의 의미를 모르겠고 《토지》는 내게 있어 무엇이었을까. 과연 앞으로 헤쳐나갈 힘은? 남아 있는 걸까. 새삼스런 자문은 아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도 새삼스런 일은 물론 아니다. 자문, 좌절, 절망, 이것들은 반복되는 일상이며 이 고질의 처방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상처받은 짐승이 굴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상처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

시집의 출간은 내 고질에 대한 처방인가, 모르겠다. 용기 한번 내어본거라 하고 말았으면 좋겠는데 시인이라는 남의 명칭을 도용한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 1988년 5월 10일 저자

(1988년 지식산업사에서 출간된 《못 떠나는 배》의 작가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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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건대 눈감는 그날까지 내게서 떠나지 않고 시심은 내 생의 버팀목이 되어주를 원하는 것이며 오늘 황폐해진 이 땅에서도 진실하게 살 수 있는 시심의 싹이 돋아나 주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 200년 1월 오봉산 밑에서

(2000년 나남에서 출간된 《우리들의 시간》의 작가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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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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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만 했던 일 끝나면

춤을 배워볼까

하얀 버선발 세우고

학이 날개 펴듯

두 팔 허공에 띄우며

나도

예쁘게 춤을 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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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가지런히 챙겨놓고

노래라도 배워봤으면

검은 부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나도 신명나게

노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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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같이 춤을 추고

소쩍새같이,

아니 아니 그냥

신명내어 노래 부르다

죽었으면 참 좋겠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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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여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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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병실에 쟈스민 향을 피워주었다

옥잠화 몇 송이도 꺾어다 주었다

열아홉 해 전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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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쪽 가슴

상처 달래려 했던가

향기 높은 옥잠화

붕대 사이에 끼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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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실 시멘트 바닥에

시들은 옥잠화 떨어졌을 때

의사 보기 민망하여

얼굴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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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향기와 피

북쪽손님들 돌아가고

세상은 온통 허무했다

잃어버린 한쪽 내 가슴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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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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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료

꽤 큰돈이 들어온 날

나는

외로워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에 흔들리는 나무그림자

주술같이 흔들리는 나무그림자

인생의 끝의 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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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 조금 먹고

이따금 동태 한 마리 끓여 먹고

쌀 보리

서너 줌이면 내 하루 족한 것을

눈 내리는 날 창가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이면 족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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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눈동자

염치없는 손들이

나를 외롭게 한다 흐느끼게 한다

소유욕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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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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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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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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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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